우리 선조들은 말 속에 어떤 신비한 힘이 배어 있다고 믿었다. '장래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상대방을 치켜세우면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해서 우리 사회에 덕담이 일반화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듯한데, 육당 최남선은 이를 언령관념(言靈觀念)이라 풀이했다.

말을 할 때도 그렇지만,들을 때 더욱 기분좋은 게 덕담이다. 고단한 일상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에게 한마디 위로의 말은 그야말로 청량수에 다름 아니다. 상처를 치료하는 영약이 되고 사랑을 일구는 묘약이 되는 것도 덕담이다. 비록 형식적이고 의례적이라 해도 정겨운 덕담 한마디는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주말이면 설날을 맞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된다. 조상을 기리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덕담은 빠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서로 건네는 덕담은 각양각색으로 "떡두꺼비 같은 아이 하나 잘 낳아라" "좋은 직장 구하거라" "부자되거라"고 소원을 빌어준다. 단순히 '해피 뉴 이어'하는 서양의 인사와는 마음 씀씀이가 다르다.

그렇지만 덕담이라 해서 다 기분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이 든 미혼자들은 "올해는 꼭 결혼해라"하는 말이 가장 듣기 싫은 덕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고 다니는 백수들은 제발 취직 얘기만은 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돈벼락 맞아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결혼정보회사 닥스클럽이 최근 조사한 내용이다.

어쩔 수 없이 두 번의 새해를 맞는 우리는 덕담의 기회도 두 번 갖는다. 정치적으로 이념적으로 갈라져 핏발 선 말들이 서로를 할퀴고,육두문자가 난무하는 세태에서 그나마 숨돌릴 여유를 갖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옹색한 생각도 가져본다.

올 설날에는 사나운 세파에 거친 말들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 비수를 감춘 혀끝일랑 내려 두고,저마다 희망의 싹을 틔우게 하는 덕담 한마디쯤 미리 준비해 보면 어떨까 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