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거나 수리해본 사람은 안다. 예쁘고 하자 없는 집을 만들려면 그때그때 청소가 잘돼야 한다는 걸. 바닥 벽 지붕 공사 모두 한 단계가 끝날 때마다 말끔히 치워져야 다음 일이 제대로 이뤄지고 마무리 역시 산뜻하게 된다. 적당히 혹은 대강 치우면 깔끔하지 않거나 어딘가 탈이 나기 십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파묻혀 흔적을 찾기 힘들고 그래서 무시되거나 가볍게 여겨지기 쉬운 기초적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예는 이 밖에도 많다. 하수도 역시 마찬가지다. 수돗물이 깨끗하려면 상수원인 하천에 오·폐수가 흘러들어가지 않아야 하고,그러자면 무엇보다 하수 처리가 완벽해야 한다.

지난 160여년 동안 인류 건강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하수도'가 꼽혔다. 영국의 의학잡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이 현대의학의 성과 15개를 골라 네티즌 투표에 부친 결과 하수도와 깨끗한 물이 항생제와 백신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20세기에 늘어난 인간의 평균수명 35년 중 30년이 그 덕이라는 설명도 나왔다.

하수도의 역사는 길다. 기원 전 6세기 바빌론에선 토관을 썼다고 하고,로마시대 하수거는 얼마나 튼튼했는지 지금도 일부를 사용한다고 할 정도다. 근대식 하수도가 도입된 건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도시에 몰려든 빈민층 사이에 전염병이 번지자 영국의 법률가 에드윈 채드윅이 아이디어를 냈다.

1830년대 유럽에서 시작된 하수도 시설이 본격화된 건 1854년 존 스노에 의해 콜레라가 수인성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였다. 우리의 경우 조선조 초기인 1411년(태종 11년) 청계천 범람 방지를 위해 수문과 수중보를 만들었고,일제 강점기인 1910∼30년 청계천 중심의 하수도가 생겼다.

하수도는 쾌적한 환경과 깨끗한 강을 만들고,침수 피해를 줄인다. 안전하고 기분좋은 삶을 위한 주요 기반시설인 셈이다. 중랑천에 물고기가 살게 된 것도 하수도 정비 덕이다. 하수 처리의 중요성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보다 앞서 실천할 일은 폐식용유를 비롯 아무 거나 마구 버리지 않는 일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