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런던 시티(금융 중심지) 근처에 있는 독일계 웨스트LB 은행 지점의 소회의실.사우디아라비아 부동산 개발업체인 다르 알 아르칸이 4억2500만달러 규모의 수쿠크(이슬람채권) 발행을 위해 설명회를 열자 40여명의 유럽계 기관투자가가 모여 귀를 곤두세웠다.

홍보대행사인 가빈앤더슨사의 마크 런씨는 "참석자가 당초 예상보다 배가량 많았다"며 "유럽에서 수쿠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두바이 부동산 개발업체인 낙힐그룹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35억2000만달러(3조3440억원) 규모의 수쿠크.단일 수쿠크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지만 시장에선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판매를 맡은 영국 바클레이캐피털이 투자자들로부터 사전주문을 받은 결과,60억달러의 매수 주문이 몰린 것.바클레이캐피털의 아룰 칸다사미 이슬람금융 본부장은 "투자자의 40%가 유럽,22%가 아시아 국적으로 중동지역(38%)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스위스 금융그룹 UBS의 이슬람 금융 담당자인 데이비드 켐프씨는 작년 말 말레이시아 정부 투자기관(카자나 나쇼날 베르하드)이 발행한 7억5000만달러짜리 수쿠크를 판매하면서 깜짝 놀랐다.

그는 "수익에 민감한 헤지펀드가 이슬람 채권에 투자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최대 투자자가 돼 의외였다"고 말했다.


이슬람경제권이 커지면서 이슬람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발행하는 수쿠크가 '빅뱅'(대폭발)을 연상시킬 정도로 급팽창,국제 금융시장의 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투자 저변이 전통적인 이슬람 국가를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데다 '돈 냄새'에 민감한 헤지펀드까지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발행 초기인 2000년 3억3600만달러에 불과하던 수쿠크 시장은 작년에 240억달러 이상으로 6년 만에 71배나 커졌다.

ABN암로의 루기에로 로모나코 이슬람 투자상품본부장은 "유럽이나 아시아 투자자들이 이슬람권 경제의 성장 과실을 누릴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수쿠크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쿠크 시장은 지난해에만 6조2200억달러에 달한 기존 채권 시장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망은 밝다.

HSBC는 올해 수쿠크 발행 금액이 300억~4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그룹 이슬람금융 책임자인 라프 하니프도 "향후 2~3년 동안 사우디와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UAE 등 중동지역 6개국의 인프라 투자액이 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며 이 중 최소 30%는 수쿠크를 통해 자금이 조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샤리아는 무기 술 담배 도박 포르노 등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지키는 수쿠크는 수익에 눈을 뜬 이슬람권 투자자들은 물론 '투자 윤리'를 점점 더 의식하는 서방투자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발행주체와 만기에 따라 수익은 다르다. 낙힐 그룹 수쿠크의 경우 수익률은 연 6.345%였다. 채권만기는 보통 2~5년이다. 짧게는 6개월,길게는 10년 이상짜리 채권도 있다. 존 웨구엘린 유럽이슬람투자은행 사장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윤리적 투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수쿠크는 이런 기준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발행기관도 다양해지고 있다.

독일의 작센 안하르트주 정부는 2004년 9월 1억유로의 수쿠크를 발행했고 세계은행도 2005년 4월 2억달러의 운영자금을 수쿠크로 조달했다.

'9·11 사태' 이후 반(反) 이슬람 정서가 강한 미국에서도 이슬람 금융의 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수쿠크를 발행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석유회사 이스트카메론 파트너스는 지난해 미국 기업 중 처음으로 1억6600만달러의 수쿠크를 발행하기도 했다.

일본은 재무성과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공조체제를 구축,말레이시아 중앙은행과 4억달러 규모의 수쿠크 발행을 논의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쿠웨이트와 손잡고 페르시아만에서 전력사업을 벌일 예정이며 이를 위해 2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수쿠크로 조달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발전소나 고속도로 같은 인프라 건설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6억5000만달러의 수쿠크 발행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미 발행된 수쿠크를 손쉽게 사고팔 수 있는 유통시장도 활성화될 조짐이다.

유럽이슬람투자은행은 최근 런던에 수쿠크 거래소를 개설,운영에 들어갔다.

두바이도 2005년 수쿠크거래소를 개설했다. 말레이시아는 수쿠크 발행 초기부터 유통시장을 뒀다.

말레이시아 금융그룹인 CIMB의 바들리샤 압둘 가니 이슬람 금융담당 부사장은 "투자자들이 지금은 수쿠크를 사서 그냥 보유하는 경우가 많지만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유통시장 활성화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부=김수언(두바이) · 주용석(런던) · 류시훈(쿠알라룸푸르 · 싱가포르)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