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중독증'이 법과 원칙 앞에 무너져 내렸다.

올해로 20년째 내리 줄파업을 벌여온 현대차 노조는 법과 원칙으로 철저히 무장한 회사측과 정부의 이례적 초강경 대응,여기에 강성노조에 더이상 밀려선 안 된다는 국민적 여론의 공감대 등 3박자가 어우러져 사실상 무력화됐다.

회사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됐던 미지급 성과급과 관련해서는 50% 지급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성과급 50% 추가 지급은 지난해 달성하지 못한 생산차질 부문과 이번 사태로 인한 생산차질을 노조가 만회한다는 '조건부'라는 점에서 그동안 노조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협상관행이 다소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회사는 노조가 막판까지 수용을 거듭 요구한 박유기 위원장 등 노조간부 22명에 대한 고소고발과 10억원대의 손배소 제기 취하 등의 요구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은 채 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번 사태는 전례 없는 회사측의 초강경 의지에 노조가 노조활동에 가장 치명타가 될 고소고발과 손배소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부분파업 단 이틀 만에 사태를 마무리함으로써 앞으로 현대차의 전투적 노사관계를 변화시키는 단초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기념품 비리로 중도 사퇴 위기에 내몰린 노조 집행부가 사장과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을 조작한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노조는 일찌감치 조합원들로부터 심한 불신을 받았다.

여기에 지난 16일 터져 나온 10대 노조 위원장 이헌구의 노사협상 뒷거래 파문은 노조원들을 사실상 심리적 공황상태로 빠뜨리는 충격파로 작용했다.

박유기 위원장이 당시 사무국장으로 있었던 만큼 사태 장기화는 자칫 치유할 수 없는 노조불신으로 이어질 것을 가장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헌구 전 위원장이 받은 거액 뇌물 일부가 전현직 노조간부들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키로 해 노조는 전례 없는 압박을 받고 있다.

노조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는 지난 16일 박 위원장 등 20여명의 교섭 위원들이 이례적으로 협상장에 먼저 나와 무려 40여분 이상 회사측 관계자를 기다리며 협상을 촉구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조가 이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진 것을 놓고 전문가들은 노조의 파업 투쟁이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지적을 하고 있다.

지난해 노사가 합의한 성과급 지급약속안을 뒤집고 나선 것이 가장 큰 화근이라는 설명이다.

노사는 지난해 8월 임급교섭 합의서를 작성하면서 목표 생산대수 100%를 초과하면 150%,95% 초과시 100%,90%초과시 50%를 지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생산실적은 161만8268대(98.3%)였다.

회사는 이에 따라 100% 성과급을 지급했다.

여기에 노조가 성과급 50%를 더 달라며 지난달 28일부터 잔업과 특근을 거부하면서 회사를 압박했고, 지난 3일에는 시무식장에서 폭행을 휘두른 것이 노조의 자멸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노조는 15일부터 불법 부분파업까지 단행했다.

이 또한 노조원들로부터 납품비리로 도덕적 상처를 입고 불명예 퇴진을 앞둔 상황에서 성과급과 관련한 노사갈등을 파업정국으로 몰아가 재기와 반전을 노리려는 국면전환용이란 비판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노조의 성과급 투쟁이 현대차 내부에 형성돼온 전투적 노사관계의 체질개선이 급속히 진행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당장 2월 중순 새 노조위원장 선거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잔업 및 특근거부,부분파업 등으로 인한 임금손실이 조합원 1인당 100만원 이상 돼 조합원들의 반강성노조 기류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재계도 노사 양측이 성과급 문제를 타결한 것과 관련,올해 전체 노사 관계에 미칠 파급 효과 등을 감안할 때 노사 갈등이 예상보다 '조기 종결'된 데 대해 다행이라고 밝혔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