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적으로 근친 간 짝짓기,즉 극단적 동종교배(同種交配)는 이종교배에 비해 열등한 개체를 생산한다고 한다. 동종교배는 동일한 형태의 대립유전자들을 발생시켜 유전적 유연성이 부족하고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며,그 결과 개체의 생존율과 번식력이 낮다는 것. 그래서 우수한 종(種)을 생산해 내는 유전기법으로 이종교배가 사용된다.
그렇다고 아무 종이나 이종교배가 가능하지는 않다고 한다. 고양이과에 속하는 사자와 호랑이와 같이 DNA 구조가 비슷한 같은 과(科) 동물 사이에는 이종교배가 가능하지만,고양이와 개는 교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인종(人種)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어느 종족 간이든 국제 결혼이 가능한 것은 인간은 유전학적으로 같은 '과'에 속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 조직이나 사회에서도 유전학적 자연법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동종교배를 계속하면 정체하거나 쇠퇴한다. 정글에 고립된 부족들이 도태되는 이유도 인종적 문화적으로 동종교배를 지속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도 '동종교배''순혈(純血)주의' 의식이 성숙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단일민족으로 지탱해 왔다는 긍지는 1980년대까지 폭발적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경제나 문화의 국경이 사라진 글로벌 시대에서는 오히려 성장의 방해물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 색채가 강해진 정치ㆍ사회 분위기로 인해 외국자본의 국내 투자가 움츠러든 게 사실이고,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은 아직도 인종ㆍ문화적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정착하느라 고통받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다름의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로마는 다양한 민족과 사상,가치를 품을 수 있었기에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한솥밥 먹고 고생한 직장 동료들,혹은 같은 고향,같은 학교 출신끼리 진한 동료애를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순혈주의로 똘똘 뭉쳐 남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조직은 결국 쇠락한다.
'순혈주의' 조직은 위기에 약하다. '동종교배'로 형성된 유전자에 내장된 배타주의 때문에 금방 변화의 추진동력을 상실하기 쉽다. 배타적 폐쇄적 유전자를 가진 조직에 긴장과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는 이종교배를 통해 조직의 유전적 특성을 바꿀 필요가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주제어로 '이종교배(crossbreeding)'를 들고 있다. 서로 다른 조직,문화,인재,기술의 '퓨전' 혹은 '융합'을 통해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해 가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가 된다는 것이다. 새해부터 집단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갈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하다. 남을 받아들이는 '크로스브리딩'으로 상생과 통합이 이뤄지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