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오자키에 있는 후지전기홀딩스 본사에 들어서면 머리가 희끗한 60대 직원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중전기 회사인 이곳은 2000년 대기업 중에서 가장 먼저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했다.

이 회사는 단카이 세대(團塊,일본판 베이비붐 세대)의 대량 퇴직을 앞두고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60세 이후부턴 주당 근무 일수와 하루 근무 시간을 직원이 마음대로 정하도록 한 것이다.

일본 기업들이 단카이 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발생하는 노동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닛세이 기초 연구소에 따르면 단카이 세대 노동력 인구(취업자와 구직자 합계)는 약 510만명으로 노동력 전체 인구의 8% 정도를 차지한다. 이들이 생산 현장에서 떠날 경우 일본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기업들의 대응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후지전기홀딩스처럼 정년을 연장하거나 아니면 일단 60세에 퇴직시킨 후 재고용하는 방식이다. 기업마다 노년층과 젊은층 비율이나 수익 구조가 달라 자기 회사에 맞는 제도를 선택하고 있다.

세계 자동차 업계의 정상을 눈앞에 둔 도요타자동차는 60세 정년퇴직 후 63세까지 재고용을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회사측은 퇴직자 중 희망자를 대상으로 능력 및 기능 등을 평가해 적임자를 선정한다. 지난해에는 1260명의 퇴직자 중 약 700명을 다시 고용했다. 신일본제철 JFE홀딩스 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퇴직자 중 희망자 전원을 다시 고용하는 제도를 실시 중이다. JFE홀딩스 관계자는 "베테랑 사원의 숙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단카이 세대의 기능 전수를 목적으로 단계적으로 정년을 늘리고 있다. 이토추상사도 마찬가지다.

정년연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져 경기가 나빠질 경우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젊은 신입 사원 채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오사카대의 고지마 노리아키 교수는 이와 관련,"정년이 65세로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기업들은 고용 및 임금 체계를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숙련된 단카이 세대를 붙잡고 싶어하지만 단카이 세대 중에서도 연장 근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연초 단카이 세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근로 의욕이 예상보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60세까지 일하겠다는 사람은 16.0%에 불과했다. 63세부터 70세까지가 56.0%로 가장 많았고 75세까지는 1.2% 였다. 끝까지 일하겠다는 사람도 19.6%나 됐다.

기존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창업을 하는 노년층들도 급증하고 있다. 요코하마에 본사를 둔 아파트 개발회사인 리치라이프는 정사원 26명 중 4명이 외부에서 온 60대 경력 사원이다. 이시다 이사오 사장은 "이들은 은행이나 대형 건설 회사 출신이어서 중소기업인 우리 회사 입장에선 크게 도움이 되는 인재들"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도쿄 미나토구에 본부를 둔 비영리법인으로 창업을 지원하는 인디펜던트 컨트랙터 협회에도 최근 60대의 신규 회원 가입이 부쩍 늘었다. 이와마츠 쇼텐 전무는 "지금까지 회사에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살려 내 사업을 하겠다는 노년층 샐러리맨들의 문의가 많다"고 밝혔다.

도쿄=최인한 특파원 janus@hankyung.com


< 용어풀이 >

단카이 세대
란. 원래 석탄 덩어리를 뜻하는 '단카이'(團塊)는 유명 소설가 사카이야 다이치가 1976년 '단카이 세대'를 펴낸 뒤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책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단카이 세대로 지칭했다.
흔히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태어난 700여만 명을 지칭한다. 1946년생을 포함해 1000만명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이 중 고도 성장기의 주역인 회사원은 약 300만명이다. 이들이 올해부터 한 해 평균 100만명씩 퇴직한다. 이들은 일본이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