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은 소설 '아버지의 편지'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세상 아비들의 마음은 다르지 않은 듯 싶다. 아비가 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자식에게만은 한(恨)을 대물림 하지 말아야지,스스로 꿈을 접는 설움도 겪게 하지 말아야지,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게 될 일은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야지. 아비들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다."

그렇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짊어지고 방패막이가 되어야 하는 숙명적인 존재다. 때로는 자기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은 더욱 쓸쓸하기까지 하다. 어깨 위에 얹혀진 삶의 무게로 남몰래 흐느끼고 외로움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고픈 말이 많아도 묵묵히 가슴에 담아두어야 하고,지친 마음을 다독여 줄 사람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아버지는 가정에서조차도 대접을 못받고 있다. 제 살을 도려내 새끼에게 주는 가시고기의 부성애(父性愛)를 가졌건만,아이들은 아버지 지갑의 두께로만 그 능력을 판단하려 든다. 권위적인 엄부(嚴父)의 자리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아버지의 존재가 가벼워지는 세상이어서인지,서울의 서대문 구청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행복한 아버지 학교'가 눈길을 끈다.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복한 아버지상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한다. 가정의 경영자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한편으론 짠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한동안 네티즌들 사이에서 '아버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아버지란 누구인가'의 글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버지!뒷동산의 바위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가슴 속에 있는 그분을 향해 '아버지'라고 크게 한번 불러 보시지요. 어쩌면 아버지는 정말 외로워도 자식에게 피해를 줄까봐 말 못한 채 당신 혼자 울고 있을지 모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아버지'라는 이름만 들어도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들이 오롯이 모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