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이튼스쿨' 전인高 가보니] 1년이면 '주입식' 틀 깨고 '스스로'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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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출신이라도 장기적으로는 과학고 1등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봅니다."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전인고등학교 조영제 교장(39)의 말이다.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스쿨'을 지향하며 지난해 3월 교육당국의 정식 허가를 받아 설립된 이 학교를 지난 5일 찾았다.
기존의 폐교를 구입해 25억원을 들여 설립했지만 학교 건물과 내부 시설은 서울시내의 여타 일반학교와 비교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평범했다.
전교생이라고 해야 전인고 소속 학생 30명(1학년 20명,2학년 10명)과 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미인가 전인학교 10명이 전부다.
그저 작은 시골학교 분위기다.
그러나 학교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입학설명회 안내 문구는 최근 주목받는 대안학교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 이 학교 학생 대부분은 서울 강남권과 분당에서 온 경우.학부모의 상당수도 수도권에 거주하는 의사와 사업가 교수 교사 등 이른바 고학력·중산층 이상이어서 멀리서 입시설명회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이 학교의 학비는 기숙사비 50만원을 포함해 월 90만원 선이고 각종 체육활동 등은 별도로 요구된다.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학교 1층 도서관으로 들어서니 지난해 학생들의 여름학기 활동을 담은 동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일반학교처럼 1·2학기로 나누고 한 달 이상 쉬는 두 번의 방학을 없앤 대신 봄·여름·가을·겨울 4개 학기(학기당 3개월)로 구성된 교육과정 중 한 학기의 수업내용이 학생들에 의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다.
인제군 내린천에서 래프팅을 즐기거나 부산에서 요트와 카약을 배우고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모습,베트남 하노이의 외국인학교를 방문하고 걸어서 제주도를 일주하며 텐트를 치는 아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전인고에서는 이 모든 활동이 정규 수업이다.
"아이들이 처음 입학하면 어른들의 간섭이 없는 것처럼 느껴 실컷 놀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이제 공부하고 싶은데요'하고 말한다"고 귀띔하는 조 교장은 "일반 중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적응하려면 통과의례처럼 약 1년에 달하는 '물빼기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학교에서 국·영·수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저녁마다 학원 다니고 컴퓨터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뭘 원하는 지,삶의 주도권을 찾기까지 필요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학교 입학생은 중학교 교내 1등을 하던 학업우수자에서부터 공부하기 싫어하던 학생,해외 유학에 실패하고 돌아온 아이들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전인고가 지향하는 가장 중요한 교육 목표는 바로 모든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잠재력과 창의력을 발견하는 데 있다.
효과는 생각보다 놀랍다.
일단 학부모들의 반응이 뜨겁다.
학부모 김 모씨(45·분당)는 "처음에는 오히려 아이가 자기 주장을 또박또박 얘기하는 게 말대꾸를 하는 것 같아 더 버릇이 없어진 게 아닌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른스럽고 밝아져 너무 좋다"고 말한다.
생활지도를 맡는 서예령 교사(45)도 "흡연이나 이성교제 문제 등 일반고에서는 심각한 문제들도 이곳에서는 아이들 스스로가 공론화하고 토론을 통해 규칙을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대안 고등학교의 교과목 수업은 어떨까.
전인고는 가을·겨울 학기로 갈수록 집중수업이 실시된다.
학생들은 학기 초 저마다 세운 학습계획을 기초로 교과목을 정하고 프로젝트 수업이나 논문을 준비한다.
일반 학교에서 50분짜리 수업을 하루에 7~8개씩 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서는 90분짜리 수업(1블록)이 하루에 5개 정도 배치돼 학생들이 수업을 모두 마치면 저녁 7시가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현재 전인고 학생들은 전원이 대학입시를 준비 중이다.
조 교장은 "학생 본인이 대학 진학을 원하면 학교는 최대한 지원한다"며 "한마디로 숙제도 많고 무지하게 강도 높은 학습이 이어진다"고 소개했다.
현재 논술을 대비하기 위해선 외부 유명 논술강사 2명을 초빙하고 있는 상태.그러나 강제성은 전혀 없다.
학교 측은 이런 방식의 교육이 학생들의 학습능력 향상에도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전인고가 최근 전국학력평가시험에 참여한 결과 1학년 학생들의 국·영·수 성적 평균은 전국 평균과 비슷하거나 다소 떨어지는 반면 2학년생들은 전국 평균을 크게 앞섰기 때문이다.
전인고 학생들은 반 개념과 흡사한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월·화·수 3일간은 교과목 공통수업이 진행되고 목·금·토에는 진로와 적성을 고려해 각기 다른 수업을 받는다.
음악·미술·영화 등 예체능계 진학을 준비하는 아이들로 구성된 '아트 스쿨'의 임창규군(16·고1)은 춘천시 전인센터에서 기타를 연습하는 식이다.
학생들은 만족도도 높은 편.해외유학을 준비하는 '글로벌 스쿨'의 임혜원양(17·고2)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2년간 친구들과 자유롭게 토론하고 어울리면서 자신감을 얻었다"며 "일반고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