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운영자금을 조달해 주는 조합원에게는 원하는 동·호수 아파트를 지정해 최고급 마감재로 설비해 드립니다."

서울·수도권의 재건축 추진 단지들 중 사업 수행 기간에 필요한 조합 운영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 늘고 있다.

금융권의 경우 조합의 신용 문제를 들어 대출을 꺼리는 데다 과거엔 공사 수주를 위해 경쟁적으로 자금 지원을 해 왔던 건설업체들도 오해와 분란의 소지가 많다는 이유로 일체 손을 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8월 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르면 재건축단지의 시공사 선정을 조합 결성과 시행 인가 이후에만 하도록 규정한 탓에 재건축사업 초기인 조합추진위원회 단계에서는 외부 지원을 통한 운영비 조달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최근 서울의 한 재건축추진위원회가 운영비를 조달해 주는 조합원에게 관리처분 단계에서 특혜(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어 눈길을 끌고 있다.

조합 설립총회를 앞둔 고덕주공 2단지 재건축추진위원회의 경우 조합 직원의 급료,홍보비 등 운영자금이 한 해에 1억5000만원 이상 들어가는 데다 예전에 선정한 협력 업체의 계약금도 지불해야 하는 등 운영비 마련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추진위는 조합원이 주택담보 등을 통해 조합사업비를 마련할 경우 자신이 받을 아파트의 평형·동·호수 지정권을 주기로 했다.

지난달 조합설립총회에서는 이 같은 조합정관이 통과됐다.

해당 조합 관계자는 "처음엔 논란이 있었지만 선착순 2억원씩 10명을 모으는 데 지원자가 의외로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는 최종적으로 관리처분총회에서 조합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데다 조합원 재산권과 연관돼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현재 운영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당수의 조합추진위는 이번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건교부 주거환경과 관계자는 "조합원 혜택 방식은 관리처분을 통해 조합원이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다만 추첨이 아닌 지정방식으로 동·호수를 결정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추첨을 하되 대상 평형을 늘려주는 등 다른 방식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