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서 연말연시 재계의 인사철이 다가왔다.

벌써부터 재계에는 전문 경영인(CEO)의 교체 여부와 승진 가능성, 오너 2-3세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 등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온갖 추측이 무성하다.

특히 신세계그룹은 지난 달 29일 정용진 부사장을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 발령하고 실질적인 3세 경영 체제에 돌입한데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박삼구 회장의 외아들인 세창씨를 입사 1년만에 그룹 전략경영본부 이사로 초고속 승진시키는 등 후계 구도를 잡아감에 따라 다른 그룹들의 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경우 내달 중순께 있을 사장단 인사에서 최근 수년간 가장 큰 폭의 물갈이가 있을 것이라는 데 삼성 안팎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2000년대 초 이후 사상 최대의 실적이 이어져 굳이 최고경영자(CEO) 교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데다 '삼성공화국론', 옛 안기부 'X파일' 사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 등 경영외적인 위기로 일종의 '비상체제'로 운영되면서 사실상 계열사 CEO 인사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올해들어 이러한 위기상황이 다소 정리되고 CEO들의 장기 재임에 따른 분위기의 이완 등 부작용이 드러남에 따라 그룹 수뇌부에서는 '물갈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학수 그룹 전략기획실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최고위층 전문경영인들의 물갈이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두 부회장이 무난하게 그룹과 삼성전자를 이끌어 왔을 뿐만 아니라 현재로서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룹 전략기획실과 삼성전자 내에 '차세대'로 거론되는 인물이 적지 않지만 아직도 이, 윤 부회장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큰 변수는 삼성의 '후계 체제'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일단 올해는 전무로 승진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단계적으로 착실히 경영수업을 받도록 한다'는 삼성의 방침에 미뤄봐서도 현직급 승진 5년째를 맞는 이 상무의 전무 승진은 결코 빠른 것이 아닌데다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의 부회장 승진 등에서 보듯 재계의 경영권 승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 상무의 승진은 나름대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문제는 재계의 경영권 승계 분위기에 편승해 삼성이 이 상무를 전무가 아니라 몇직급 뛰어오른 고위직급으로 발탁함으로써 '차세대 총수'임을 명백히 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이 상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원로급' 인사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감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삼성 관계자는 "결코 무리하지 않는 삼성의 사풍을 감안할 때 이 상무가 파격적으로 몇 단계를 건너 뛰어 승진할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좋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올 한해 '현대차 사태'라는 굵직한 사건을 경험한 데다,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기아차 정의선 사장의 후계구도 문제가 불거졌던 만큼 이번 정기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말에 부장급 이하 직원들에 대한 인사가 단행된 뒤 내년초 임원급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정규 승진을 주요 내용으로 한 소폭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게 그룹 내부의 기류다.

이는 정몽구 회장이 지난 10월 "연말 조직개편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데 이어 현재까지 인사와 관련한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현대차 사태 및 정의선 사장의 승계 작업 등이 이번 인사에서는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며, 현재 각종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만큼 업무 공백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대규모 인사는 없을 것이라는 게 현대차측 설명이다.

이달 중순께 계열사별로 정기인사를 단행하는 LG그룹의 경우 인사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말 LG화학의 김만석 사장을 비롯해 7명의 사장급 인사가 이뤄진 데다 올해 7월 LG텔레콤 정일재 사장이 새로 선임되는 등 CEO 인사 요인이 적기 때문이다.

또 한때 거취가 주목됐던 LG전자의 김쌍수 부회장도 하반기부터 실적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교체설'이 상당히 누그러진 상태다.

다만 김 부회장이 물러날 경우 후임으로는 우남균 LG전자 중국총괄 사장, 남용 전 LG텔레콤 사장,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권영수 사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두산그룹은 연말에 정기인사는 없지만 수시 인사 형태를 통해 소폭 인사를 단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중공업그룹으로 변모를 꾀하고 있는 두산은 핵심계열사인 두산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에 이남두 사장과 최승철 사장이 각각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어 전문경영인(CEO) 변동은 없을 전망이다.

다만 두산의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과 차남인 박정원 두산산업개발 부회장,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사장을 비롯한 두산그룹 4세대 오너 10명이 각 계열사 임원 또는 팀장급으로 속해있어 연말에 승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두산은 총수 일가 사태 등으로 오너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수시 인사를 통해 승진을 하더라도 외부에는 알리지 않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대림산업은 지난 달 말 실시한 사장단 인사에서 오너인 이준용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이달 말 있을 후속인사에서 이준용 회장의 장남 이해욱 부사장의 승진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부사장은 지난 7월 부사장으로 승진해 재임 기간이 짧은 편이지만 전문경영인인 이용구 부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아 그룹을 총괄함에 따라 이해욱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신임 회장을 보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