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외환위기 이후 창고 속에 내팽개쳐 둔 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지급준비금' 카드를 불쑥 꺼내든 것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금리 인상보다는 시중의 과잉 유동성을 직접 조절하는 수단을 동원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시중의 과잉 유동성을 회수함으로써 부동산시장 안정을 꾀하겠다는 포석도 깔려있다.

그러나 한은이 지급준비율을 상향 조정한 것은 본원통화를 흡수해야 하는 중앙은행의 의무를 시중은행에 떠안긴 것이어서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일 전망이다.


○대출 급증으로 유동성 증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는 것은 주택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대출 수요가 증가한 점도 있지만 금융회사가 최근 해외 차입을 상당히 많이 하고 있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자금 흐름 측면만을 놓고 보면 이 총재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돈'으로 불리는 본원통화는 작년 말 43조2490억원에서 올해 9월 43조3502억원으로 거의 늘어나지 않았는데도 총통화(M2)는 작년 말 1021조4487억원에서 올해 9월 1112조5971억원으로 91조원이나 증가했다.

돈의 규모를 작년 말 수준으로 유지했는데도 은행들의 대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연간 통화승수가 23.6배에서 25.7배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원통화 중 한국은행에 예치된 돈을 뺀 화폐발행액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화폐발행잔액은 지난해 말 26조1358억원에서 올해 9월 말 29조1185억원으로 11.4%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시중에 나도는 돈을 덜 흡수한 것이다.


○통화환수 부담 시중은행에 전가

이 총재는 "콜금리 목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통화정책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일부 예금에 대한 지준율을 높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1999년 5월 통화량을 직접 조절하는 정책을 폐기하고 금리로 통화를 조절하는 정책으로 바꿨다.

2000년 4월에 지준율을 손보기는 했지만 거주자 외화예금에 대한 지준율을 합리화(7%에서 2%로 인하)하는 차원에서 조정했을 뿐 통화량을 조절하는 수단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은이 이번에 지준율을 상향 조정한 것은 은행들의 대출 능력을 직접 겨냥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한은은 통화안정증권 발행 등 공개시장조작으로 시중자금을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통안증권 발행을 늘릴 경우 한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통안증권 발행 잔액은 10월 말 기준으로 164조원에 이른다.

통안증권을 추가로 발행하기보다는 지준율을 높임으로써 통화 환수의 부담을 시중은행에 떠넘긴 조치가 지급준비율 상향 조정으로 볼 수 있다.


○금리 상승 불가피할 듯

한은의 또 다른 노림수는 금리 인상이다.

지급 준비금 추가 적립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은행들은 대출금리를 올릴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으로 몰리는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셈이다.

지준율 상향 조정에 따른 추가 부담은 12월23일 이후 신규 예금뿐만 아니라 기존 예금에도 발생한다.

반면 은행들은 기존 대출금에 대해서는 추가 부담을 지울 수가 없다.

은행별로 추가로 쌓아야 하는 지급준비금은 국민은행 9000억원,신한은행 7000억원,우리은행 6000억원,하나은행 3000억원 정도다.

이 돈의 4.5% 정도가 추가 비용으로 발생하게 된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