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14) 서울성가소비녀회, 가난한자를 예수님처럼 모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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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다니엘 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어요.
입원한 지 꼭 40일 만이군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하월곡동 성가복지병원 7층.각 병동을 돌아보던 병원장 박영란 암브로시오 수녀(51)에게 담당 간호사가 환자의 죽음을 알려준다.
이 병원 7층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임종간호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거리를 떠돌다 불치의 병을 얻은 이들이 고통을 덜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는 곳이다.
6층의 치료병동과 5층의 장기요양 병동을 지나 2층으로 내려가니 20~30명의 환자가 복도에서 진찰을 기다리고 있다.
꾀죄죄한 얼굴에 덥수룩한 머리,남루한 옷차림이 한눈에 봐도 여느 병원의 환자들과는 다르다.
1958년 성가의원으로 시작해 1990년 국내 최초의 무료병원으로 전환한 이 병원은 노숙인과 극빈층,무의탁 노인 등을 위한 치료시설이다.
평일에는 하루 평균 60명,자원봉사 의사들이 오는 토요일엔 180~200명의 환자가 찾아온다.
환자는 많은데 상근 의사는 한 명뿐이어서 역부족인 상황.암브로시오 수녀는 "경험 많은 내과의사 한 분만이라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환자의 70%가량은 노숙인,치료비와 간병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극빈층이다.
환자들의 대부분이 노숙인이다 보니 간·당뇨·고혈압 등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퇴원 후 몇 달이 지나면 똑같은 질병으로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흔하다.
한 끼의 밥보다는 한 잔의 술이 당장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병원에선 몇 번이고 치료해준다.
또 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으면 큰 병원으로 보내 치료비까지 대준다.
무료병원이라고 해서 적당히 치료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저희들 보고 참 대단하다고들 하시지만 사실은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독지가들이 이 병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그런 분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했을 뿐이지요."
암브로시오 수녀는 모든 공을 다른 이들에게 돌린다.
호스피스병동에서 16년째 임종봉사를 하는 15명,날마다 퇴근 후 환자목욕·청소 등 2~3시간씩 봉사한 뒤 귀가하는 직장인,남들이 오기 힘든 새벽에 와서 아침밥을 배식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에 출근하는 사람들,명절 연휴에 가족 모두가 와서 봉사하는 이들….상근직원 45명과 수녀 25명 외에 25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8000여명의 후원자들이 이 병원을 움직인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의사·간호사·약사가 50명씩이나 되고 일반 봉사자들은 주방일에서부터 간병,세탁,재봉,청소,환자목욕 등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 병원을 설립·운영하고 있는 서울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의 독특한 영성과 정신 때문이다.
'소비녀'란 '작은 여종'이라는 뜻.1943년 12월 서울 혜화동에서 이 수녀회를 창설한 프랑스 출신의 성재덕 신부(1910~1992)는 "자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모습으로 와서 가장 가난하게 살며 헌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의 종이 되어 그들을 사랑하고 섬길 것"을 강조했다.
그 영성의 샘터인 서울성가소비녀회 총원은 병원에서 멀지 않은 정릉 입구에 있다.
길음시장 옆의 성가길을 따라 언덕배기로 올라가자 막다른 곳에 수녀원이 있다.
커다란 철문 옆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녀 한 분이 나와 반긴다.
1969년 이곳으로 이전한 수녀원은 현재 고층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제법 널찍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정원을 가운데 두고 수녀회 본원,무의탁 노인들을 모신 안나의 집,창설자인 성재덕 신부가 선종 때까지 살았던 사제관,수녀회 창설 60주년 때 지은 성재덕관,피정과 연수·세미나 등을 위한 교육관 등이 배치돼 있고 본원 뒤편 언덕에는 숲속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배고픈 사람이 축복을 받고 우는 이가 기뻐하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창설자 신부님은 가난을 제일의 덕으로 삼고 가난한 이와 병든 이,무의무탁한 분들을 돕도록 하셨어요.
저희 수녀회는 언제 어디서든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고통받는 빈자의 편에 서려고 해요."
성가소비녀회 총원의 참사위원을 맡고 있는 최살레시오 수녀의 설명이다.
무료병원뿐만 아니라 요양원,유치원,기도의 집,양로원,재활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처음 성가소비녀회가 무료병원을 추진하자 많은 사람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수녀들'이라며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녀들은 더 쪼갤 것도 없는 생활비의 10%를 내면서까지 성가복지병원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수녀원에선 아직도 큰 빨래 이외에는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고생을 자초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시적인 것,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는 요즘이지만 '소비녀'의 비전은 그런 것을 다 포기하고도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삶으로써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적 기쁨의 편안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적 편함은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즐거움과 편리함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적 머무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살레시오 수녀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노숙자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체험한다"고 했다.
서울역에 가면 노숙자들이 반가운 친척이라도 만난 것처럼 "수녀님"하고 달려올 때,그때 그 자리가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라고도 했다.
남들이 기피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눈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창설자 신부가 가르친 '소비녀 십계-기뻐하라 소비녀'가 그 원천이다.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기뻐하라.네 정신과 육신이 못생겨도 기뻐하라.사람들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너를 모든 사람이 중히 여기지 않아도 기뻐하라.네게 천한 일을 시켜도 기뻐하라."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어요.
입원한 지 꼭 40일 만이군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하월곡동 성가복지병원 7층.각 병동을 돌아보던 병원장 박영란 암브로시오 수녀(51)에게 담당 간호사가 환자의 죽음을 알려준다.
이 병원 7층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임종간호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거리를 떠돌다 불치의 병을 얻은 이들이 고통을 덜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는 곳이다.
6층의 치료병동과 5층의 장기요양 병동을 지나 2층으로 내려가니 20~30명의 환자가 복도에서 진찰을 기다리고 있다.
꾀죄죄한 얼굴에 덥수룩한 머리,남루한 옷차림이 한눈에 봐도 여느 병원의 환자들과는 다르다.
1958년 성가의원으로 시작해 1990년 국내 최초의 무료병원으로 전환한 이 병원은 노숙인과 극빈층,무의탁 노인 등을 위한 치료시설이다.
평일에는 하루 평균 60명,자원봉사 의사들이 오는 토요일엔 180~200명의 환자가 찾아온다.
환자는 많은데 상근 의사는 한 명뿐이어서 역부족인 상황.암브로시오 수녀는 "경험 많은 내과의사 한 분만이라도 더 있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환자의 70%가량은 노숙인,치료비와 간병비를 부담하지 못하는 극빈층이다.
환자들의 대부분이 노숙인이다 보니 간·당뇨·고혈압 등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고 퇴원 후 몇 달이 지나면 똑같은 질병으로 다시 찾아오는 경우도 흔하다.
한 끼의 밥보다는 한 잔의 술이 당장의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병원에선 몇 번이고 치료해준다.
또 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으면 큰 병원으로 보내 치료비까지 대준다.
무료병원이라고 해서 적당히 치료하고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저희들 보고 참 대단하다고들 하시지만 사실은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독지가들이 이 병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저희는 그런 분들을 위해 장소를 제공했을 뿐이지요."
암브로시오 수녀는 모든 공을 다른 이들에게 돌린다.
호스피스병동에서 16년째 임종봉사를 하는 15명,날마다 퇴근 후 환자목욕·청소 등 2~3시간씩 봉사한 뒤 귀가하는 직장인,남들이 오기 힘든 새벽에 와서 아침밥을 배식하고 설거지까지 마친 후에 출근하는 사람들,명절 연휴에 가족 모두가 와서 봉사하는 이들….상근직원 45명과 수녀 25명 외에 25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8000여명의 후원자들이 이 병원을 움직인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의사·간호사·약사가 50명씩이나 되고 일반 봉사자들은 주방일에서부터 간병,세탁,재봉,청소,환자목욕 등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이 병원을 설립·운영하고 있는 서울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의 독특한 영성과 정신 때문이다.
'소비녀'란 '작은 여종'이라는 뜻.1943년 12월 서울 혜화동에서 이 수녀회를 창설한 프랑스 출신의 성재덕 신부(1910~1992)는 "자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모습으로 와서 가장 가난하게 살며 헌신했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의 종이 되어 그들을 사랑하고 섬길 것"을 강조했다.
그 영성의 샘터인 서울성가소비녀회 총원은 병원에서 멀지 않은 정릉 입구에 있다.
길음시장 옆의 성가길을 따라 언덕배기로 올라가자 막다른 곳에 수녀원이 있다.
커다란 철문 옆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녀 한 분이 나와 반긴다.
1969년 이곳으로 이전한 수녀원은 현재 고층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제법 널찍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정원을 가운데 두고 수녀회 본원,무의탁 노인들을 모신 안나의 집,창설자인 성재덕 신부가 선종 때까지 살았던 사제관,수녀회 창설 60주년 때 지은 성재덕관,피정과 연수·세미나 등을 위한 교육관 등이 배치돼 있고 본원 뒤편 언덕에는 숲속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배고픈 사람이 축복을 받고 우는 이가 기뻐하게 되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창설자 신부님은 가난을 제일의 덕으로 삼고 가난한 이와 병든 이,무의무탁한 분들을 돕도록 하셨어요.
저희 수녀회는 언제 어디서든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고통받는 빈자의 편에 서려고 해요."
성가소비녀회 총원의 참사위원을 맡고 있는 최살레시오 수녀의 설명이다.
무료병원뿐만 아니라 요양원,유치원,기도의 집,양로원,재활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힘이 여기서 나온다.
처음 성가소비녀회가 무료병원을 추진하자 많은 사람이 '세상 물정 모르는 수녀들'이라며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수녀들은 더 쪼갤 것도 없는 생활비의 10%를 내면서까지 성가복지병원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수녀원에선 아직도 큰 빨래 이외에는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고생을 자초한다.
"디지털 시대에 가시적인 것,즐거움을 주는 것을 찾는 요즘이지만 '소비녀'의 비전은 그런 것을 다 포기하고도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삶으로써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적 기쁨의 편안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적 편함은 오히려 불편함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즐거움과 편리함보다 '지금 여기'에서 '내적 머무름'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살레시오 수녀는 "가난하고 병든 이들,노숙자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체험한다"고 했다.
서울역에 가면 노숙자들이 반가운 친척이라도 만난 것처럼 "수녀님"하고 달려올 때,그때 그 자리가 하느님 나라가 아닐까라고도 했다.
남들이 기피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보는 눈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창설자 신부가 가르친 '소비녀 십계-기뻐하라 소비녀'가 그 원천이다.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기뻐하라.네 정신과 육신이 못생겨도 기뻐하라.사람들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너를 모든 사람이 중히 여기지 않아도 기뻐하라.네게 천한 일을 시켜도 기뻐하라."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