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서 중식 프랜차이즈 사업가로 우뚝 선 김현수 취룡 사장 "'스리잡스'로 행복 요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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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을 완전히 말아먹고 노점상으로 전락했을 때 재기를 위해 상가매매 중개와 우유 배달 등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하느라고 잠은 하루 2시간도 채 못잤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안주를 만드는 도중에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고 밤새 소주 2병씩을 비우며 버텼죠."
중식당 직영점과 가맹사업을 하는 김현수 사장(37).
그는 성남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중식당 '취룡'을 운영하고 있다.
직영 1호점인 신흥동에서 하루 400만원,직영 2호점인 광주시 목현리에선 하루 450만원 매출을 올린다.
이 두 곳을 합쳐 한 달 순익이 5000만원을 거뜬히 넘는 알짜배기 점포들이다.
부지가 400평인 2호점은 현재 자산가치가 50억원을 넘는다.
지난 9월에는 성남시 태평동에 취룡 메뉴를 기본으로 한 퓨전 주점 '취앤' 직영 1호점도 열었다.
취룡 가맹점은 분당 일대에 3개,취앤 가맹점은 수도권 일대에 14개가 문을 열었거나 개점을 준비 중이다.
김 사장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의 겉모습만 보고 귀공자를 연상한다.
동그랗고 해맑은 인상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은 거칠었다.
"달궈진 자갈밭을 맨발로 달려온 느낌"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 사장의 불행은 6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찌감치 사업으로 기반을 잡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부터.병약한 어머니는 생활고와 신부전증이라는 무거운 짐을 홀로 떠안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나뿐인 누나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죠.마침 북가좌동의 한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 주방 일을 배울 기회를 얻었습니다." 주방 보조와 설거지,매장 청소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주인 눈에 들면서 그는 아르바이트생에서 정식 직원으로 격상됐다.
군대에 가서도 PX 방위로 배치된 덕분에 3000여개 상품 가격을 외우고 재고를 정리하는 실무적인 업무를 배우게 됐다.
그의 사업 인생은 제대한 이후 90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맨 처음 친구와 동업으로 서울 이화여대 정문 앞에 20평짜리 레스토랑을 냈다.
장사는 짭짤하게 잘 됐다.
이후 빌린 돈 3000만원으로 같은 상권에 레스토랑을 열어 93년 초까지 운영했다.
그는 이 가게에 혼을 바쳤다.
주방 일과 서빙,카운터 등 1인 3역을 하는 것은 물론 가게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가게를 처분한 뒤 그는 8000만원이란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호사다마랄까,또 한 번의 불행이 그를 덮쳤다.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 종합시장 상권에 낸 55평짜리 지하 레스토랑이 초기부터 비틀거린 것.호프집으로 바꾸면 건달들이 들락거리고,큰 돈을 들여 라이브카페로 개조했더니 손님이 뚝 떨어졌다.
95년 가게를 정리,빚잔치를 하고 나니 그의 손에는 달랑 500만원이 남았다.
그걸로 어머니가 기거할 월세방을 얻고 누나는 요양원으로 보내야 했다.
"이틀 밤낮을 소주와 피눈물로 지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섣부른 성공에 자만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요."
마냥 주저앉아 있기에 그는 너무 젊었다.
재기를 위해 여인숙에 방을 얻고 16만원을 들여 포장마차를 꾸몄다.
쓰러졌던 신흥동 그 자리 도로변에 포장마차를 끌고 나가 밤새 오뎅,우동,닭꼬치,김밥,소주를 팔았다.
주변이 유흥가라 장사는 잘 됐다.
재료비를 빼고도 하루 40만원씩 꼬박꼬박 벌렸다.
낮 시간에는 상가매매 중개업소에서 무급으로 일했다.
보수는 상가 거래가 성사되면 받는 수수료(5%)가 전부.그래도 한 달에 300만원 벌이는 됐다.
포장마차 일이 끝나는 새벽 5시 이후 2시간 동안 우유 배달을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부채를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포장마차는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99년 결혼 비용 2700만원을 모두 점포를 마련하는 데 투입했다.
지금의 신흥동 직영 1호점이다.
신혼 살림은 가게 건물 옥탑방에 차렸다.
중고TV와 침대,냉장고,세탁기가 살림의 전부였다.
김 사장이 직접 개발한 사천탕수육과 해물볶음짬뽕,6500원짜리 4개 요리 세트 등은 성남 일대에서 빅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20평 가게 앞에는 점심,저녁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바로 옆 건물 지하에 추가 매장을 낸 것도 이 때문.2004년 20억원을 들인 광주시 목현리 2호점도 히트를 쳤다.
2005년에는 12억원을 투자,성남시 상대원동 아파트형 공장 건물 안에 250평 규모의 식재료 가공공장도 갖췄다.
김 사장이 '대박 음식점 주인'에 그치지 않고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가'로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
포장마차에서 안주를 만드는 도중에 쏟아지는 잠을 쫓으려고 밤새 소주 2병씩을 비우며 버텼죠."
중식당 직영점과 가맹사업을 하는 김현수 사장(37).
그는 성남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중식당 '취룡'을 운영하고 있다.
직영 1호점인 신흥동에서 하루 400만원,직영 2호점인 광주시 목현리에선 하루 450만원 매출을 올린다.
이 두 곳을 합쳐 한 달 순익이 5000만원을 거뜬히 넘는 알짜배기 점포들이다.
부지가 400평인 2호점은 현재 자산가치가 50억원을 넘는다.
지난 9월에는 성남시 태평동에 취룡 메뉴를 기본으로 한 퓨전 주점 '취앤' 직영 1호점도 열었다.
취룡 가맹점은 분당 일대에 3개,취앤 가맹점은 수도권 일대에 14개가 문을 열었거나 개점을 준비 중이다.
김 사장을 처음 보는 사람은 그의 겉모습만 보고 귀공자를 연상한다.
동그랗고 해맑은 인상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 역정은 거칠었다.
"달궈진 자갈밭을 맨발로 달려온 느낌"이라고 그는 말한다.
김 사장의 불행은 6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찌감치 사업으로 기반을 잡은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면서부터.병약한 어머니는 생활고와 신부전증이라는 무거운 짐을 홀로 떠안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나뿐인 누나도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자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죠.마침 북가좌동의 한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가 주방 일을 배울 기회를 얻었습니다." 주방 보조와 설거지,매장 청소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주인 눈에 들면서 그는 아르바이트생에서 정식 직원으로 격상됐다.
군대에 가서도 PX 방위로 배치된 덕분에 3000여개 상품 가격을 외우고 재고를 정리하는 실무적인 업무를 배우게 됐다.
그의 사업 인생은 제대한 이후 90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맨 처음 친구와 동업으로 서울 이화여대 정문 앞에 20평짜리 레스토랑을 냈다.
장사는 짭짤하게 잘 됐다.
이후 빌린 돈 3000만원으로 같은 상권에 레스토랑을 열어 93년 초까지 운영했다.
그는 이 가게에 혼을 바쳤다.
주방 일과 서빙,카운터 등 1인 3역을 하는 것은 물론 가게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가게를 처분한 뒤 그는 8000만원이란 거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호사다마랄까,또 한 번의 불행이 그를 덮쳤다.
경기도 성남시 신흥동 종합시장 상권에 낸 55평짜리 지하 레스토랑이 초기부터 비틀거린 것.호프집으로 바꾸면 건달들이 들락거리고,큰 돈을 들여 라이브카페로 개조했더니 손님이 뚝 떨어졌다.
95년 가게를 정리,빚잔치를 하고 나니 그의 손에는 달랑 500만원이 남았다.
그걸로 어머니가 기거할 월세방을 얻고 누나는 요양원으로 보내야 했다.
"이틀 밤낮을 소주와 피눈물로 지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섣부른 성공에 자만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요."
마냥 주저앉아 있기에 그는 너무 젊었다.
재기를 위해 여인숙에 방을 얻고 16만원을 들여 포장마차를 꾸몄다.
쓰러졌던 신흥동 그 자리 도로변에 포장마차를 끌고 나가 밤새 오뎅,우동,닭꼬치,김밥,소주를 팔았다.
주변이 유흥가라 장사는 잘 됐다.
재료비를 빼고도 하루 40만원씩 꼬박꼬박 벌렸다.
낮 시간에는 상가매매 중개업소에서 무급으로 일했다.
보수는 상가 거래가 성사되면 받는 수수료(5%)가 전부.그래도 한 달에 300만원 벌이는 됐다.
포장마차 일이 끝나는 새벽 5시 이후 2시간 동안 우유 배달을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부채를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포장마차는 그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99년 결혼 비용 2700만원을 모두 점포를 마련하는 데 투입했다.
지금의 신흥동 직영 1호점이다.
신혼 살림은 가게 건물 옥탑방에 차렸다.
중고TV와 침대,냉장고,세탁기가 살림의 전부였다.
김 사장이 직접 개발한 사천탕수육과 해물볶음짬뽕,6500원짜리 4개 요리 세트 등은 성남 일대에서 빅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20평 가게 앞에는 점심,저녁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바로 옆 건물 지하에 추가 매장을 낸 것도 이 때문.2004년 20억원을 들인 광주시 목현리 2호점도 히트를 쳤다.
2005년에는 12억원을 투자,성남시 상대원동 아파트형 공장 건물 안에 250평 규모의 식재료 가공공장도 갖췄다.
김 사장이 '대박 음식점 주인'에 그치지 않고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가'로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