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은 과학분야 중 앞으로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자를 처음으로 배출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로 손꼽힌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부터 중화학공업을 집중 육성하며 똑똑한 인재들이 화학과로 대거 몰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 화학과는 1960년대 국가고사.예비고사 전국 수석자들이 당연히 지망하는 코스로 통했으며 이후 1980년대까지 이 대학 물리학과,전자공학과와 함께 국내 이공계 인재 집합 '트로이카'로 군림했다.

이들 서울대 화학과 출신은 현재 중·장년 과학자로 성장해 세계 과학계가 주목하는 연구성과를 속속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대표주자로 꼽히는 인물은 한국인 최초의 하버드대 종신교수인 박홍근 교수(39).박 교수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분자전자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이 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분자전자과학은 전자회로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인 트랜지스터를 분자 몇 개로만 만들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손목시계만한 슈퍼컴퓨터,한번 충전하면 1년은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그는 이 연구성과로 다른 과학자들이 평생 한번 논문을 싣기도 어렵다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지금까지 무려 5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지난해 전국의 과학자 239명을 대상으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화학자를 추천하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박 교수는 36명의 추천을 받아 1위에 올랐다.

대학 재학 시절 은사인 이은 대한화학회장(서울대 화학과 교수)은 박 교수를 "서울대 화학과가 배출한 가장 우수한 과학자"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온 가족을 모으면 종합병원을 차릴 수 있다'는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과학자인 막내 외삼촌의 영향으로 서울대 화학과(86학번)에 입학했다.

박 교수는 "외삼촌이 건네준 '학생과학'이란 잡지를 읽으며 과학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며 "5살 때 이후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한번도 바꾼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4학년 때 이미 외국의 유명저널에 논문을 게재했으며 서울대를 수석 졸업한 뒤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버클리대 박사후과정(포스트닥)을 거쳐 32세 때인 1999년 하버드대 물리화학과 교수가 됐다.

그는 "공부를 하는 동안 줄곧 행복했다"며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라면 진심으로 일을 즐길 때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서울대 화학과 출신 연구자로는 유룡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73학번)가 지목된다. 그는 이동전화나 휴대형PC 등에 사용될 초미세 연료전지의 핵심기술인 탄소나노튜브 연구로 2000년,2001년 2년 연속으로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했다.

특히 2000년 논문은 네이처 커버스토리를 장식했다.

과학기술부는 지난해 유 교수를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과학자"라고 평가했다.

67학번의 백명현 서울대 화학과 교수는 올초 교육인적자원부가 선정한 '국가석학 지원사업대상자'에 여성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백 교수는 분자를 2개 이상 모아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초분자'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꼽힌다.

57학번으로 69세의 김성호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구조생물학'을 개척한 공로로 매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30대이던 1973년 엑스선 결정구조 분석법으로 전달RNA(tRNA)의 3차원 구조를 밝혀내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또 암을 일으키는 중요 단백질 중 하나인 라스(ras)의 3차원 구조를 밝혀냈다. 이 밖에 혈액응고를 막는 생체 고분자 물질을 개발한 김성완 한양대 석좌교수(60학번),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긴 탄소나노튜브를 개발한 김광수 포항공대 교수(71학번),'다공성(多空性)결정물질'을 개발한 김기문 교수(72학번),나노입자를 기존 방법보다 1000배 저렴하면서도 생산량은 1000배 더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2004년 '네이처 머티리얼즈'지를 장식한 현택환 서울대 교수,수소저장용 유기금속 초분자체를 개발한 손성욱 성균관대 교수(92학번) 등도 주목받는 서울대 화학과 출신 과학자들이다.

비(非) 서울대 출신 화학자로는 나노과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최진호 이화여대 석좌교수(연세대 66학번)가 첫손에 꼽힌다.

최 석좌교수는 2004년 농축산물이나 잉크 등 액체에 DNA를 뿌려 제품 이력을 직접 표기할 수 있는 '나노 DNA 바코드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과학저널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이 밖에 노화 등 생체 내 필수 기능에 관여하는 '산소화 효소'의 역할 및 메커니즘을 밝혀내 지난해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한 남원우 이화여대 석좌교수(미국 캘리포니아대 85년 졸업),차세대 항생제를 개발할 수 있는 분자튜브를 선보여 지난해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발표한 이명수 연세대 교수(충남대 77학번),분자의 움직임을 동영상처럼 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지난해 사이언스에 실린 이효철 KAIST 교수(KAIST 90학번) 등이 주목받는 화학자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