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5단체가 120개 규제개혁과제를 담은 공동건의서를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경제단체들이 불합리한 규제의 철폐(撤廢)를 요구하고 나선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이번 건의서에서 나타난 규제들을 보면 아직도 숱한 시대착오적 규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기업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현실이 한심할 지경이다.

주택사업자의 주택건설용 토지를 비업무용으로 간주해 종부세 등을 물려 결과적으로 분양가를 높이도록 하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토지를 산 뒤 사업계획 승인을 받아 착공될 때까지 통상 5년이 걸리는 현실을 간과한 행정편의주의의 전형인 셈이다. 자동차는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자동차운반용 트레일러는 여전히 옛날 규격을 고집함으로써 물류비용만 늘리고 있는 규제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외면한 규제는 이뿐만 아니다. 해양법은 장애인을 선원으로 쓰지 말라고 규정한 반면 노동부는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장애인 의무고용 인원을 채우지 못한 기업에 고용부담금을 부과하는 실정이다. 이같이 부처간,법간 충돌(衝突)을 일으키는 규제도 많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장단을 맞추라는 건지 기업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과 민간인들로 구성된 규제개혁기획단까지 설치해 덩어리 규제를 개혁하는데 주안점을 두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규제가 증가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국무총리실에 따르면 규제총량은 2000년 9월 7133건에서 지난 9월 현재 8083개로 늘어났다. 규제를 없애는 데는 미적미적한 반면 새로운 규제를 계속 늘려온 탓이다. 이처럼 산업의 발전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로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 경제활성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더 이상 불요불급(不要不急)한 규제를 없애는 일을 미뤄서는 안된다.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 나오려면 투자활성화가 급선무이며 이를 위해 규제철폐가 실천으로 옮겨져야함은 더이상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규개위는 재계의 절실한 요구사항을 원점에서 검토한 뒤 불합리한 규제의 일제 정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도 조직이기주의와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날 때다. 기업이 정말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바꾸는데 나서야 한다. 그것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경제를 살리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