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야구' `기다리는 야구' `뚝심의 야구'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을 맡아 4강 신화를 창조했던 덕장(德將) 김인식(59) 한화 감독이 올 해 포스트시즌에도 `믿음의 야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팀의 페넌트레이스 3위를 지휘한 김 감독은 KIA와 준플레이오프를 2승1패로 힘겹게 통과한 뒤 1주일 넘게 휴식하며 플레이오프에서 기다렸던 정규시즌 2위이자 지장(智將) 김재박(52) 감독이 이끄는 현대마저 1패 뒤 3연승의 거센 상승세로 물리치고 소속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다.

이는 한 번 믿음을 준 선수에게는 인내심을 갖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다리며 선수 간 인화를 최고 가치로 삼는 김 감독의 지도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감독 특유의 야구 스타일은 지난 1994년 9월 두산의 전신인 OB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나타난다.

부임 직전 전임 윤동균 감독의 독선적인 지휘 스타일에 반감을 품은 투수 박철순 등 주전선수 21명의 `집단 이탈사건'으로 팀은 창단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김 감독은 특유의 인화와 통솔력을 발휘, 고참 선수들을 다독거리며 팀 내 갈등을 해소했고 이듬해(1995년) 최하위라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극적 드라마를 연출했다.

이후 중하위권을 오가던 김 감독은 뚝심을 발휘하며 1998년 이후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성사시켰고 2001년에도 한국시리즈 9회 우승에 빛나는 용장(勇將) 김응용 감독이 지휘하는 `호화군단' 삼성을 쓰러뜨리고 6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복귀했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신뢰와 인화의 야구 철학은 변함없이 확인됐다.

KIA와 준플레이오프 3경기 10타수 무안타와 현대와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6타수 무안타 등 16타수 무안타의 빈타에 허덕이던 지명타자 이도형을 믿고 기다린 게 대표적인 사례.
이도형은 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현대와 플레이오프 3차전 4-4로 팽팽하게 맞선 6회 균형을 깨는 1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20타석 19타수(1볼넷 포함) 만에 나온 첫 안타가 짜릿한 5-4 승리를 부르는 통쾌한 결승 홈런이었던 것이다.

또 KIA와 준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현곤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괴물 루키' 유현진에 대해 "큰 경험이 됐을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아 플레이오프 3차전 5⅓이닝 3실점 호투로 이끌어냈고 헛방망이질을 하던 제이 데이비스와 조원우, 신경현에게도 믿음을 계속 보내 필요할 때 한 방을 칠 수 있는 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난 해 한물 갔다는 평가를 받은 `풍운아' 조성민과 문동환, 지연규 등을 재활시켜 팀을 4강에 올려 `재활 공장장'이라는 닉네임을 들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이기는 야구에 집착해 재미 없는 경기를 한다는 김재박 감독과 대결을 승리로 장식하며 한화를 지난 1999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진출시킨 김인식 감독.
모나지 않은 성격과 촌철살인 유머로 팬들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김인식 감독이 한국시리즈 2연패에 도전하는 국보급 투수 출신의 선동열 삼성 감독과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또 한 번의 그라운드 기적을 일굴지 주목된다.

(대전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