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대학과 기업이 윈윈(win-win)할 수 있다."

'동양의 MIT'로 불리는 인도공과대학(IIT) 델리대의 D.T.코타리 전 총장(62)은 IT 인재양성 문제로 고민하는 한국에 이렇게 조언했다.

인도공대 에너지학센터 교수로 재직중인 코타리 전 총장은 지난 12~14일 한국정보통신대(ICU) 주최로 열린 '정보통신기술(ICT) 교육을 위한 세계대학총장포럼' 참석차 한국에 왔다.

그는 "우수한 교수와 학생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기업환경에 맞춘 커리큘럼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IT분야 대학을 많이 세워 경쟁시키고 한국과 인도가 IT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운나 ICU 총장이 지난 14일 총장실에서 코타리 전 총장과 IT 인재양성 방안에 관해 대담했다.

◆허운나=한국에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적 이슈가 된 반면 인도에서는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의대와 법대보다 공대가 더 인기가 높다.

이유는 무엇인가.

◆코타리=인도는 인구가 많아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기초과학 분야 과학자가 필요한 데도 이 분야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

인도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에는 1400여개 공학대학이 있다.

인기도 높다.

그런데 과학자는 공학자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다.

공학자와 달리 과학자는 혼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과학자의 급여를 올려주고,산업계나 연구소에서도 좋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

◆허운나=한국에서는 대학과 기업 간 협력을 통한 실용주의 교육을 강조한다.

대졸자를 채용한 뒤 실무에 투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재교육비도 상당히 든다.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 양성을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반해 대학은 20~30년 후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분야에 대한 학문 연구에 치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둬야 한다고 보나.

◆코타리=인도는 나라가 크고 다양한 종류의 대학이 있다.

따라서 산업계에서 공학분야와 과학기술분야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엔지니어링 스쿨이라면 두 가지 분야 모두 중점을 둬 교육해야 한다.

특히 과학기술과 엔지니어링 분야 모두가 산업계와 연계돼야 한다.

◆허운나=한국에는 200여개 4년제 대학과 160여개 전문대가 있다.

대학 진학률과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교육의 효율이나 교육 시스템은 하위그룹에 속하고 연구 성과도 매우 미흡하다.

인도공대는 떨어지면 MIT에 간다고 할 정도로 손꼽히는 명문대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어떻게 했나.

◆코타리=최고의 교수진과 최고의 학생,최고의 교육과정(커리큘럼)이 최고의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

인도공대는 기업을 통해 많은 자금을 조달하고,기업에 우수한 연구인력을 제공한다.

풍족한 자금을 교육에 활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이끌었고 변화하는 기업환경에 맞는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기업들을 활발하게 참여시켰다.

기업의 지원을 받아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제공하는 '윈윈 시스템'을 갖췄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커리큘럼에 없어도 자유롭게 가르친다.

◆허운나=인도는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매년 20만명이 넘는 소프트웨어 인력이 배출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로 속속 진출하고 있다.

인도가 IT 분야 중 유독 소프트웨어에 강점을 갖는 이유는.

◆코타리=소프트웨어 분야는 기계를 많이 확보할 필요가 없다.

소프트웨어와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인도 학생들의 교육 열기는 매우 뜨겁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인력 자체가 강점이다.

오랜 기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살아남았고 교육시설이 탄탄하다.

특히 인도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민족성이 그렇다.

부족하다고 느끼면 보완하고,뒤처지면 개발하고 노력한다.

미국 캐나다 사람들은 오후 5시면 퇴근하지만 인도 사람들은 일이 끝날 때까지 계속 한다.

◆허운나=한국도 마찬가지다.

천연자원이 없고 유일한 자원이 두뇌다.

한국을 이만큼 이끌어 온 것은 교육의 힘이다.

영어가 된다는 것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한국도 영어 문제만 해결되면 충분히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통신대는 IT 특화 대학이다.

어렵지만 모든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는 등 독특한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타리=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해 냈다.

우수한 두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가능했겠는가.

열심히 노력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허운나=인도가 세계 IT 인력의 28%를 제공한다고 들었다.

IT업계에서 보면 인도는 '인력 생산공장'인 셈인데 한국 중국 일본의 IT 인력 수준을 비교한다면.

◆코타리=굳이 아시아 국가끼리 비교할 필요가 있나.

아시아 IT 인력은 세계와 비교해야 할 만큼 우수하다.

중국은 많이 나아졌다.

중국도 많은 사람이 미국에서 공부한다.

하지만 인도공대 같은 대학은 없다.

중국에 가보진 않았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해 큰 발전을 이루고 있다.

단지 민주주의가 없다는 게 약점이다.

◆허운나=우수 인재의 해외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나.

'브레인 드레인(두뇌유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인도 국내 기술 발전과 연계시키는 구상이 있다면.

◆코타리=인도공대 졸업생의 20% 정도가 해마다 외국으로 나간다.

하지만 두뇌유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브레인 뱅크(두뇌은행)'라고 본다.

인도공대는 전국에 7개 대학이 있는데 총장들이 얼마 전 미국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을 때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IT 인재를 미국에 많이 보내준 데 대한 감사 표시였다.

인도는 폐쇄정책을 쓰진 않는다.

대부분 인력이 나갔다가도 원하면 다시 돌아온다.

그들은 자산이다.

동문들이 대학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정부나 대학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우수 인재들을 돌봐주고 지원한다.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학자에게는 석좌기금을 만들어 연구활동을 지원하고,이름을 딴 IT 스쿨을 짓기도 한다.

인도공대에는 30여개의 석좌기금이 있다.

◆허운나=인도는 소프트웨어 분야에서,한국은 휴대폰 와이브로와 같은 IT 제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IT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 어느 분야부터 협력해 나가면 좋겠는가.

◆코타리=한국과 인도의 IT분야 협력은 윈윈 시츄에이션이 될 것이다.

각자의 강점을 조합하면 '골든 컴비네이션'이 될 것이다.

특별한 프로젝트나 특정 분야로 국한할 필요는 없다.

대학에서 듀얼 디그리(복수학위)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학생과 연구원 교류는 물론 기업 간 협력도 중요하다.

삼성 LG 현대차 등은 인도에 진출해 성공했다.

기업 간 협력은 이미 시작됐다.

◆허운나=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은 낙후돼 있다.

중소기업은 국내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에 관해 조언한다면.

◆코타리=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정부는 세제를 통해 지원하고,인프라를 개선하고,기업들에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정보통신대처럼 IT분야에 특화된 대학을 많이 만들어 대학끼리 경쟁하게 해야 한다.

정부는 중소기업에 일감을 많이 만들어주고 격려해야 한다.

기업은 정부가 산업발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정부와 기업은 각자 역할이 있다.

정부가 거북이처럼 천천히 가더라도 기업에 도움만 된다면 그게 낫다.

정리=양준영·사진=김영우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