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직후 나라 안팎에 난리가 났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걱정이다. 증권이나 외환시장 같은 경우에는 워낙 참여자들이 많고 이미 글로벌화돼 있기 때문에 충격이 상대적으로 작지만 외국과 거래하는 것이 많은 일선 기업들로서는 이번 사태의 영향이 크기도 하거니와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당장 거래선이 끊어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여러 가지 거래나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에 놓이게 되는 건 피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런 중차대한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드러난 우리 기업들의 대응태세는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회사 차원에서 위기관리팀이 가동됐다는 뉴스도 찾기 어렵다. 모두들 '깜짝' 놀라고 '초긴장'하고 '긴급 회의'를 하는 데 그쳤다. 일이 터지고 나서 수습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미리 충분히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으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이 이런 종류의 큰 변화다. '시나리오 경영'의 중요성이 다시 떠오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전략에 활용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공군이 처음이었다. 적의 행동을 예상하고 거기에 대처할 수 있는 전술,전략을 미리 세워보기 위해서였다. 이를 경영에 도입해 성공을 거둔 회사는 세계적인 석유회사인 로열더치셸이었다.

셸은 1970년대 초 당시 경제여건이나 경영환경은 별 문제가 없었으나 석유업의 특성상 정치,전쟁 등 외부 변수가 초래할 수 있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인식 아래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시나리오와 구체적인 계획을 포함한 최종 전략을 수립했다.

이 시나리오 경영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때. 그해 10월6일에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직후 다른 회사들이 '충격'을 받고 대책 마련에 허둥댈 때 셸은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필요한 조치들을 밟아나갔다. 세계 7위의 정유사가 이 사태를 계기로 단번에 2위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시나리오 경영 덕분이었다.

사실 시나리오 경영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럴 필요성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근시안이 문제다. 이번 북한 핵 사태로 이런 준비를 갖출 필요성은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먼저 회사 차원에서 위기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나라 차원에서는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과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이 있다.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면 작은 팀이라도 위기관리 매뉴얼과 시나리오를 전담하는 조직을 만드는 일이 긴요하다.

시나리오는 대부분의 부서가 참여하는 브레인스토밍을 반드시 거칠 필요가 있다. 변화가 너무 빨라 특정팀만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파급효과가 많아서다. 예를 들면 이번 북한 핵 사태와 관련해 '예상되는 100가지'를 자유토론으로 짚어보는 것 같은 활동이 긴요하다. '우리 업종에는 당장 별 영향이 없음'이라는 간단한 보고서로는 그 안에 들어있는 더 큰 위기와 새로운 기회를 놓치게 된다. '환율 불안' 등 일반적인 예상에서부터 '방독면 판매증가''이민신청자 급증' '핵 보험 출시 가능' 같은 다소 엉뚱한 전망도 이런 회의를 통해서 걸러 볼 수 있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인 만큼 세상의 주요 변화는 어떤 식으로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돼있다. 뉴스를 보면서 혀만 차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리스크까지 '관리'할 수 있어야 일류기업이 될 수 있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