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7개월 간 일본 야구 대장정 마무리
방망이 한 자루를 쥐고 일본 열도 평정에 나섰던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이 10일 도쿄돔에서 벌어지는 주니치 드래곤스전을 끝으로 7개월간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이승엽은 화려했던 1년을 뒤로 하고 13일 통증을 유발했던 왼쪽 무릎을 수술할 예정이다.
내년에도 요미우리에 잔류할지, 자신의 영원한 꿈인 메이저리그 무대를 다시 한 번 두드릴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승엽은 남은 기간 재활에 몰두하면서 진로 문제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열린 야구 국가대항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엽은 9개월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WBC에서는 한국팀의 주포로 홈런(5개) 타점(10개) 전체 1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방망이 솜씨를 뽐냈고 정규 시즌에서는 동료가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불구, 홀로 외로이 맹타를 휘두르며 요미우리 역대 70번째 4번 타자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워렌 크로마티 이후 요미우리 역대 두 번째 최고 용병 타자라는 극찬과 함께 '한국 선수의 무덤'이라던 요미우리에서 최초로 한 시즌을 성공적으로 보낸 이승엽의 올 한 해를 정리해 본다.
◇미야자키發 이승엽 홈런 태풍
이승엽은 2월 스프링캠프지인 미야자키에서부터 전매특허인 홈런포를 쉴 새 없이 가동했다.
지난해 지바 롯데에서 30홈런을 때리며 절반의 성공을 거둔 이승엽은 새 팀으로 이적한 뒤 맞은 첫 훈련에서부터 가공할 파워를 과시했다.
매일 배팅 훈련 때 방향을 가리지 않고 미야자키 선마린스타디움의 펜스를 넘겼으며 비거리는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1루 경쟁자로 거론되던 외국인 선수 조 딜런과 파워 경쟁에서 이미 승리했고 주포 고쿠보 히로키보다도 낫다는 평을 들었다.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를 딱 1경기만 뛰고 WBC 대표팀에 소집돼야 했던 이승엽은 "WBC가 길어져 시범 경기에 얼마 나서지 못할 상황이라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우에 불과했다.
◇WBC에서 세계를 호령하다
3월5일 도쿄돔에서 일본과 벌인 WBC 지역예선전에서 이승엽은 1-2로 뒤지던 8회 이시이 히로토시로부터 우측 펜스를 훌쩍 넘기는 역전 결승 투런포를 작렬시키며 '도쿄 대첩'의 주인공이 됐다.
일본을 제치고 한국을 조 1위로 끌어올린 이승엽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2라운드 멕시코전과 미국전에서는 메이저리그 출신 로드리고 로페스, 돈트렐 윌리스로부터 각각 2점 아치와 솔로포를 앗아내며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방망이 침체로 고전하던 한국팀에서 이승엽은 이종범(KIA)과 함께 4강 신화를 이룬 쌍두마차의 한 축이었다.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은 홈런 5개와 타점 10개를 올린 이승엽을 보고 이미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낙점했다고 술회했다.
◇역대 3번째 외국인 개막전 4번타자
3월31일 도쿄돔에서 벌어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 시즌 개막전에서 이승엽은 역대 요미우리 외국인 선수로는 1981년 화이트, 1987년 크로마티에 이어 세 번째로 개막전 4번 타자의 중책을 맡았다.
이승엽은 이날 0-0이던 1회 1사 2,3루에서 상대 우완투수 미우라 다이스케로부터 2루수 옆을 총알같이 꿰뚫는 중전 적시타를 날리며 첫 타석부터 환호성을 내지르게 만들었다.
6회에는 솔로포로 홈구장 첫 홈런을 신고하는 등 5타석 2타수 2안타 3볼넷, 3타점 5득점으로 펄펄 날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巨人 이승엽의 무한질주
4월 중순부터 약 3주간 연이은 좌완 투수와 승부에 지친 이승엽은 타격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며 타율이 4할 대 초반에서 2할 대 후반까지 추락했지만 왼쪽으로 밀어치는 연습을 부단히 한 끝에 다시 정상 궤도를 되찾았다.
이후부터는 이승엽의 독주 체제였다.
특히 지난해 인터리그에서 12홈런으로 공동 홈런왕에 올랐던 이승엽은 올해 인터리그에서도 타율 0.360을 때리고 대포 16발을 발사하는 등 홈런왕을 2연패했다.
이승엽은 좌우 코너를 절묘하게 파고드는 센트럴리그 좌투수들의 스타일을 파악, 무리 없이 밀어치고 당겨치는 부채꼴 타법으로 슬럼프를 벗어났다.
또한 일본 생활 3년차를 맞아 파워와 함께 유연한 스윙을 겸비하며 어느 투수가 나오더라도 쉽게 물러나지 않는 해결사로 거듭났다.
그 결과 홈런의 독주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교타자 니오카 도모히로를 제치고 팀 내 타격 1위로 나선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9일까지 이승엽은 타율 0.325, 41홈런, 108타점을 올리며 홈런과 타격에서는 센트럴리그 2위, 타점은 3위에 올랐다.
요미우리에서 100타점 이상은 지난 2002년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 이후 4년 만에 나왔다.
득점권 타율도 0.325로 수준급 이상이었다.
41개의 홈런 중 도쿄돔에서 22개를 터뜨려 도쿄돔 한 시즌 최다 홈런 타이기록을 세웠고 좌투수를 상대로 19개, 우투수에게는 22개를 뽑아내 좌우 균형을 이뤘다.
지난 2년간 지바 롯데에서 당한 '플래툰시스템'의 한(恨)을 제대로 풀어 버린 셈이었다.
시즌 내내 참아오던 왼쪽 무릎 통증이 지난달 초 악화하면서 이승엽은 줄곧 지켜오던 홈런 1위 자리를 타이론 우즈(주니치.45개)에게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타선의 절대적인 도움 속에 차곡차곡 기록을 이어간 우즈와 달리 이승엽은 동료의 도움이 거의 없이 스스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기록의 영양가는 우즈보다 뛰어나다.
◇기억에 많이 남았던 이승엽의 홈런포
이승엽의 홈런은 유독 야구팬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그만큼 결정적인 순간 터진 대포였기에 팬들의 감동도 배가됐을 터.
WBC 일본전, 멕시코전에서의 결승 아치가 서막이었다면 4월21일 도쿄돔에서 열린 영원한 라이벌 한신 타이거스와 시즌 첫 경기에서 나온 끝내기 홈런은 스타 탄생을 알리는 결정판이었다.
이승엽은 1-2로 뒤지던 연장 11회 상대 마무리 구보타를 상대로 좌측 펜스를 살짝 넘기는 끝내기 역전 결승 투런포를 작렬시키며 팬들을 온통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8월1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난 한신을 상대로는 1회 좌완 에이스 이가와 게이를 상대로 좌측 펜스를 넘어가는 투런포를 쏘아 올리며 한일 통산 400호 홈런을 달성했고 2-2로 맞선 9회에는 다시 이가와의 직구를 통타, 도쿄돔 가운데 펜스에 꽂히는 굿바이 아치를 그렸다.
9월7일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한신전에서는 역시 이가와를 상대로 시즌 38,39호 홈런을 잇달아 몰아치며 센트럴리그 전구장 홈런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승엽은 오사다하루(王貞治),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양키스)에 이어 만 30세 이전에 400홈런을 달성한 세 번째 선수로 남았다.
그러나 6월11일 지바 롯데전에서는 명백한 홈런을 치고도 선행 주자의 누공과를 선언한 심판의 오심 탓에 홈런이 취소되는 어이없는 사태를 당하는 등 안 좋은 기억도 있었다.
어느 때보다 뿌듯한 한 해를 보낸 이승엽이 진로 문제를 놓고 다시 한번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왔다.
"올해 후 미국에 가지 못하면 앞으로 힘들다"고 밝힌 이상 이승엽이 또 다른 무지개를 찾아 태평양을 건널지 요미우리의 영원한 스타로 잔류할지 그의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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