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 공휴일인 지난 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서울반도체㈜.

휴대폰 냉장고 등 전자제품 화면에서 빛을 발하게 해주는 핵심부품인 발광다이오드(LED) 생산라인.

최첨단 자동화 라인이지만 장비들 사이로 하얀 작업복과 마스크를 착용한 100여명의 직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LED회로기판인 PCB(Printed Circuit Board)의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생산과정이 아무리 자동화되도 불량품을 솎아내는 등의 미세한 작업은 결국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탓이다.

개천절에 이은 추석 연휴. 사이사이 '샌드위치 데이'까지 합해 무려 9일을 쉬는 회사들이 허다하지만 서울반도체 직원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김치냉장고나 휴대폰 등 겨울이 '대목'인 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9~11월에 주문물량이 집중되는 만큼 회사 매출의 3분의 2가량이 이 기간에 이뤄질 정도다.

게다가 최근 들어선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병학 상무는 "중국 대만의 저가제품이 많이 들어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며 "아직은 우리 제품의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지만 그렇다 해도 만일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추석 연휴 기간을 반납하면서까지 일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과 경기도 안산에 공장을 갖고 있는 서울반도체의 직원수는 약 700명. 실제 이 중 생산업무와 관련된 550여명의 직원이 주7일 하루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LED 칩 생산을 담당하는 장지애씨(23ㆍ여).

고향은 경상북도 문경.

"솔직히 부모님 얼굴도 뵙고 싶고 고향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입사 5개월의 새내기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서울에서 지내기로 했다.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내가 잘 되는 것"이란 생각에서다.

장씨는 "비슷한 업종에 근무하는 친구들 중 주문이 없어 쉬는 경우가 많은데 그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편"이라며 활짝 웃는다.

같은 라인에 근무하는 김대영씨(27ㆍ여)도 비슷한 생각이다.

전라남도 여수가 고향인 그는 "2002년 입사 이후 추석을 집에서 쇤적이 없다"며 "그래도 회사가 그만큼 잘 돌아간다는 뜻이기 때문에 짜증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물론 회사측은 명절을 반납하고 일하는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해준다는 생각이다.

휴일근무수당을 섭섭지 않게 지급하고,추석 연휴가 끝난 뒤에는 대체휴가를 쓰게 해주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표시한다.

"경영진은 회사 상황을 이해해주는 직원들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이 상무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생각해 임원진 역시 연휴 동안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공장의 엔지니어로 근무 중인 김종현씨(28)는 "우리 회사가 추석 명절까지 반납하며 납기를 맞춘다는 사실을 주요 고객인 대기업들이 안다면 아마 앞으로도 우리 회사를 계속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추석 근무가 궁극적으로 회사는 물론 나 자신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일이 될 것 같다"고 자신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