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마리 화장지가 줄줄 풀려 나온다

황새냉이가 하얗게 중얼거린다

낙동강 백사장에 푹 삶은 광목 한 필씩 널어놓고

어머니들 깔깔거리며 아래로 떠내려간다

광목 위로 피라미 떼가 헤엄쳐 올라온다

고요에도 두께가 있다,아주 두꺼운 고요가 이스트처럼

두루마리 화장지를 부풀린다

안개가 삼켰다가

확,뱉어낸 한 장의 풍경속으로

풀 먹인 이불 빨랫줄에 털어 널며

어머니들 돌아온다 중얼중얼 햇살 속에서

피라미 떼 투명한 알들이 튄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긴 물길 끌고 간다

-송종규 '두께' 전문


사물은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달라진다.

어느 화장실에나 있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풀려나오는 것을 보면서 시작된 이미지 여행이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화장지에서 백사장에 널린 광목을 연상하고 광목 위로 헤엄치는 피라미떼를 거쳐 고요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화장지를 이스트처럼 부풀리는 두꺼운 고요,그리고 안개가 삼켰다가 확 뱉어낸 풍경의 기발함.결국 긴 물길 끌고 가는 두루마리 화장지에서 이미지 여행은 끝난다.

보기에 따라 사물이 달라지듯,생각이 바뀌어야 삶도 바뀌는 게 아닐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