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마,다른 건 잘 모르겠고…어쨌거나 이제 다시 일할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입니더."

포항지역 전문건설노조의 파업이 종결된 지 하루가 지난 21일 포스코 포항공장 내 파이넥스 건설 현장. 파업이 시작됐던 지난 7월1일 이후 83일 만에 공사 현장에 돌아온 조합원 박모씨(53)의 얼굴엔 안도의 표정이 역력했다. 박씨는 "석 달 가까이 일을 하지 못해 금전적 손해가 막심했다"며 "추석 전까지 그나마 열흘 정도는 일한 뒤 명절을 맞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파업기간 중 수입이 없어 추석 명절 지내기가 다소 걱정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부분의 조합원은 파업기간의 임금 손실로 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했다. 한 조합원은 "많지는 않지만 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아 생활비로 사용했다"며 "파업기간에 빚을 진 동료들이 주위에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업무에 복귀한 대부분의 조합원은 실익 없는 장기 파업을 후회하는 모습이었다. 일부에선 대책없는 파업을 이끌었던 집행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조합원 김모씨(40)는 "지도부가 조금만 욕심을 버렸으면 조직이 이렇게 와해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사태를 악화시킨 민주노총이 더 밉다"고 지적했다. 조합원 최모씨(51)는 "조합원 대다수는 빨리 파업을 접고 복귀를 원했지만 집행부와 일부 조합원의 반대로 그러지 못한 게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파업을 계기로 전·현직 반장급 조합원들이 반장협의회를 구성했다"며 "앞으로 반장협의회를 중심으로 노조 집행부의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투쟁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노사 합의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조합원은 "노조가 파업을 끝내지 말고 좀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지도부만 믿으라고 해 끝까지 따랐는데 이게 뭐냐. 경찰과 싸우다 다치고,일자리를 잃은 조합원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날 조합원들이 작업현장에 거의 복귀하면서 포스코 포항공장은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었다. 3개월 가까이 올스톱됐던 포항공장의 34개 공사현장에서는 일제히 작업이 재개됐다. 서상일 포스코 설비투자기획팀 리더는 "오늘(21일) 복귀한 조합원은 총 1585명으로 평상시의 80% 수준"이라며 "파업기간 중 다른 지역으로 일을 나간 사람을 빼면 거의 모든 조합원이 복귀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포항시민들은 일제히 노조의 파업 종결을 환영했다. 포항공장 인근 죽도시장에서 M회집을 운영하는 이모 사장(38)은 "파업기간 중 죽도시장의 매출은 적게는 30%,많게는 50%씩 줄었다"며 "파업이 장기간 이어지다 보니 처음엔 동조하던 포항시민들도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말했다.

조합원 이모씨(55)는 "올해를 거울삼아 내년부터는 포항에서 지긋지긋한 파업이 없어질 것 같다. 나를 포함해 많은 노조원들이 '다시는 파업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를 공공연히 한다. 회사가 있어야 조합원도 있고,조합원은 일을 해야만 살 수 있다는 점을 이번 파업으로 확실히 깨달은 셈"이라고 말했다.

포항=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