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성장 과정은 극적이었다.

GDP 규모가 1960년 20억달러에서 2005년에는 약 8000억달러까지 증가했다.

45년 만에 약 400배가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위 수출주도형 불균형 성장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주로 해외 시장에 물건과 서비스를 팔자. 그리고 이를 위해 잘 될 것 같은 분야 몇 개만 선택해 집중 지원하자'는 전략이 먹혀들면서 현재 우리의 수출은 3000억달러까지 증가했고 수출의 효자 노릇을 하는 중화학 공업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물론 수출과 경제 성장을 책임질 기업의 성장이 눈부시게 진행됐고 이들 기업이 투자와 출자를 반복하면서 소위 계열구조가 나타났다.

"총수 A가 B기업을 설립한다.

B기업이 잘 되면 새로운 사업 진출을 위해 C기업을 설립한다.

C는 다시 D1과 D2를 설립하고 D3를 인수한다.

그리고 이 모든 기업들을 계열구조의 정점에 있는 창업자 내지는 오너가 지배한다"라는 식으로 속칭 문어발식 확장이 지속됐다.

눈덩이가 한 번 구르기 시작하면 엄청난 속도로 커지듯 기업들이 한 번 잘 되기 시작하자 무서운 속도로 확장됐고 성공한 기업들에 있어서 계열경영구조가 정착됐다.

그리고 이와 함께 창업자가 모든 계열의 정점에서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너경영,그리고 기업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가족경영이 나타나게 됐다.

계열경영 오너경영 가족경영으로 대표되는 이 구조가 바로 우리나라 재벌구조의 핵심이다.

(물론 이는 각각 선단경영 황제경영 세습경영으로 불리기도 한다.)

출자총액제한제도(이하 출총제)는 1986년 처음 도입된 이후 개정- 폐지- 재도입- 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제도의 근간은 주식보유한도 제한제도다.

제한액수는 자기자본금의 25%이며 재벌 계열사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계열사 B가 C1 C2 D의 주식을 보유할 경우 이 주식가치를 다 합해 자기자본의 25%까지만 보유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식보유 대상이 계열사가 아니라도 상관없이 적용된다.

계열사가 타기업 주식을 매입하고 보유하는 행위에 대해 일단은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하는 것이 이 제도다.

총수 A가 자기의 지배력을 확장하기 위해 B기업으로 하여금 다른 기업의 지분을 취득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규 사업에 진출하려면 B기업 내에 새로운 사업부문을 설치하면 되지 굳이 C기업에 대한 지분을 가질 게 뭐냐 라는 접근이 뒤에 깔려있다.

나아가 재벌구조는 외환위기의 주범이고 이 구조를 고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잘 되기 힘들다는 지적도 연결돼 있다.

한 번 폐지된 후에 다시 부활하면서 막강한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는 이 제도는 결국 재벌구조에 대한 치유방안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이 제도는 너무 강력한 사전 규제다.

B기업의 C기업 주식 취득은 그 자체가 금지되거나 제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른 어떤 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한 나라가 없다.

혹시 그렇게 취득한 지분으로 인해 부작용이 나타나면 이 자체를 고치면 된다.

부작용을 완화한다고 강력한 사전 금지 처방을 쓰면 출자와 투자의 순기능까지 망가진다.

둘째 이 제도는 선별 규제다.

자산 규모 6조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에 속하는 계열기업들에만 적용되는 규제다.

따라서 이 규모보다 작은 그룹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 중에는 어떻게든 자산 규모를 줄여 적용 대상에서 빠지려는 시도마저 나타나고 있다.

셋째 이 제도는 누더기 규제다.

정상적인 지분출자마저 제한되다 보니 기업들의 불만이 가중됐고 이에 따라 예외인정 적용제외 등의 조항이 만들어 졌다.

이러다 보니 전체 적용 대상의 40%만이 규제를 받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넷째 이 규제는 현재 경제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규제다.

지금 한국 경제에서는 과소투자가 문제다.

기업이 투자를 너무 안 해 문제가 심각해 지는 현 시점에서 이 제도는 기업의 출자를 제한함으로써 선출자-후투자로 이어지는 고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많은 경우에 지분 취득 내지 출자는 투자의 전 단계적 특성을 가진다.

출자를 막으면 후속 투자도 없어진다.

"안 하고 말지" 해 버리는 것이다.

다섯째 기업 간 출자구조로 연결되는 계열경영구조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며 어떤 나라도 그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 나라는 없다.

지배구조는 성과와 연결해 평가돼야지 구조 자체를 가지고 "나쁘다 좋다"를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금 공정위를 중심으로 이 제도를 폐지하되 대안을 도입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대안들 중에는 기업이 느끼는 부담의 무게가 출총제보다 훨씬 더 무거운 것 마저 있다.

출총제는 이제 규제로서의 명을 다해가는 것 같다.

그러나 대안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차라리 한동안 존속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서울시립대 교수 chyun@uo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