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석유화학산업 역사에서 에틸렌은 '산업의 쌀'로 군림해 왔다.

원유에서 나오는 나프타를 분해하면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등 3대 기초 유분이 나오는데 이 중 에틸렌 생산량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폴리에틸렌(PE) 등 에틸렌을 원료로 해서 만드는 제품들은 각종 필름 전선 피복 섬유 등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대표적인 석유화학 제품이다.

그래서 에틸렌은 석유화학산업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 왔다.

그랬던 에틸렌의 전성시대가 끝나가는 것일까? 최근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서는 산업의 무게중심이 에틸렌에서 프로필렌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

대한유화 LG석유화학 삼성토탈 등 국내 주요 석유화학업체들이 에틸렌을 섭씨 3000도의 온도에서 재가공해 프로필렌으로 바꾸는 OCU(올레핀스 컨버전 유니트) 설비 증설에 잇따라 나서고 있는 것.

SK 여천NCC 등 다른 업체들도 기존 공정에서 에틸렌 대신 프로필렌을 최대한 많이 뽑아내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에틸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정도로 취급받던 프로필렌이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게 된 건 이르면 내년부터 에틸렌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동의 석유화학업체들은 나프타 대신 에탄가스를 이용해 에틸렌을 생산하는데 나프타를 이용한 에틸렌에 비해 원가가 3분의 1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동산 에틸렌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 에틸렌 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에탄가스에서는 생산되지 않는 프로필렌에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프로필렌을 원료로 하는 폴리프로필렌(PP) 등의 쓰임새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프로필렌의 몸값을 끌어올리고 있다.

범퍼나 헤드램프 등 자동차 부품 소재,폴리카보네이트와 같은 전기전자 소재 등 주요 산업용 소재 분야에서 프로필렌 파생 제품의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것.쉽게 말해 프로필렌이 부가가치도 높고 수요도 많은 '효자 품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서중식 LG석유화학 경영관리팀장은 "에틸렌 수요의 연간 성장률은 4% 안팎에 그치는 데 비해 프로필렌의 성장률은 5∼6%에 달한다"며 "이에 따라 과거 프로필렌 가격은 에틸렌 가격의 60∼70%에 그쳤지만 최근 들어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싸게 팔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OCU는 에틸렌과 부타디엔을 재가공해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설비라는 점에서 이 같은 석유화학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OCU는 연산 10만t짜리 설비를 짓는 데 300억∼400억원이 들어가는 비교적 투자비용이 싼 설비다.

대한유화는 국내 최초로 지난해 12월 연산 11만t짜리 OCU의 가동을 시작했으며 LG석유화학은 오는 11월 가동을 목표로 13만t짜리 설비를 짓고 있다.

삼성토탈은 호남석유화학과 손잡고 610억원을 들여 2008년에 연간 20만t 규모의 OCU를 준공할 계획이다.

유화업계 관계자는 "중동 에틸렌 생산업체들의 대규모 설비 증설,산업용 소재 중심의 유화제품 수요 증가 등 시장상황의 변화에 국내 업계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며 "정유업체들이 부가가치가 낮아진 벙커C유를 수요가 급증하는 경질유로 재가공하는 고도화 시설 증설에 올인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손성태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