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유럽과 미국 순방을 통해 여러가지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일단 노 대통령의 단일 순방으로는 가장 길다. 정확히 2주간 국내를 비우게 된다. 이는 역대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모두 포함,두 번째로 긴 기간이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일정도 처음이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때문이지만 핀란드 헬싱키 한 도시에서만 5박(泊)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순방기간 동안 노 대통령이 소화해야 하는 정상회담만 10개다. 지금까지 9번을 무사히 마쳤다. 국빈 방문인 그리스와 루마니아,핀란드 외에도 중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결코 가볍지 않은 비중을 갖고 있는 국가의 정상들과 만났다.

실제 이를 곁에서 지켜보면 이런 강행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14일 동안 전달해야 하는 공식 연설만 스무 차례가 넘고,각종 기자회견과 담화,현지 동포 간담회와 같은 행사까지 합치면 30번 가까이 된다. 아셈에서는 아시아 조정국 의장 자격으로 회의를 주재하고,네 차례의 정상회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30분 단위로 일정을 쪼개서 비집고 들어오는 정상회담도 처리해야 했다.

윤태영 대변인은 "이 정도 일정을 받아낼 수 있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각종 회담과 회의를 처리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입력되는 어머어마한 양의 정보를 스스로 걸러내는 것이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정은 앞으로 남은 한 번의 회담과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로 순방은 이제 정점으로 치닫는 느낌이다. 수행원들의 굳어진 얼굴에서도 한·미 정상회담이라는 '본게임'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진다.

해결기미가 안 보이는 북핵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등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의제들이고 한반도의 운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이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한·미 정상회담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마무리를 잘 지어야 한다는 부담도 크다. 노 대통령이 핀란드에서 워싱턴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무슨 결심을 했을지는 15일 0시 백악관에서 열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여섯 번째 만남에서 알게 될 것이다.

헬싱키=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