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과 재계가 지난 2일 합의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 5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가 수용 여부를 결정짓지 못한 채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노동부는 수용과 거부방침 사이를 오가면서 여론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지만 각계 입장이 너무 달라 쉽사리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당초 7일로 예정됐던 입법예고안 발표 일자를 8일로 연기한데 이어 또다시 다음 주로 연기했다.

김성중 노동부차관은 이날 "노사합의안에 대한 입장이 제각각으로 의견수렴 과정이 더 필요해 입법예고안 발표일을 늦추기로 했다"며 "일을 추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노사로드맵)에 대해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각계의 입장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 내 경제부처와 재계 일각,민주노총,학계 등에선 노사합의안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합의 당사자인 한국노총과 재계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연금 등을 개혁하기 위해선 노사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으로 어느 정도 노사합의 정신은 존중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고심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각계각층의 입장이 제각각이다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이날까지 노사합의 정신과 개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예고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는 2개 핵심조항에 대한 시행시기를 노사가 합의한 5년보다 앞당긴 3년 정도 유예하면서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명문화시키는 방안을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노동부 관계자는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정부의 의지를 어느 정도 살리면서 노사가 합의한 5년유예 정신을 함께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예고안이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부처 내 노동개혁에 대한 의지가 높은데다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시행시기를 유예하지 않고 내년에 곧바로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럴 경우 정부가 입법예고 뒤 의원입법 형태로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5년 유예에 대한 각계 의견이 다양해 정부의 입장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며 "최종 결과는 다음 주 중 입법예고 때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사합의안을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 알려지면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노사관계 로드맵의 핵심쟁점에 대한 유예기간을 3∼4년 정도 줄이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의 발언은 정부가 노사 합의안을 전면 거부하지 않고 유예기간 조정 등으로 절충안을 마련하면 수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