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까지 연루된 법조 비리 사건이 터져나온 이후 법원 판사들은 사법부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법조비리 사건으로 인해 취재 경쟁이 과열돼 각 언론사의 법원 담당 기자들에게도 지난 한 달은 편치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기자들을 괴롭힌 것은 늘어난 업무 부담만이 아니었다.

판사 등 만나는 법원 관계자들마다 기자들에게 청탁 아닌 청탁을 해 왔기 때문이다.

법조비리 사건을 보도하더라도 법원의 권위와 신뢰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게 요지였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하는 것 같다"는 불만에서부터 "검찰 쪽에서는 평검사가 연루됐는데 법원은 왜 고등부장이냐"는 음모론을 거쳐 "법원이 국민의 신뢰만은 잃지 않도록 해 달라"는 읍소에 이르기까지 '청탁'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법원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 과연 검찰의 무리한 수사나 언론의 과잉보도 탓일까.

지난달 31일 한 언론이 이른바 '관선변호'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판사가 지인의 부탁을 받고 특정 당사자에게 유리하도록 사건을 처리해 달라며 담당 판사에게 청탁을 하는 관선변호 행태를 비판한 내용이었다.

놀라운 점은 해당 보도에 대한 판사들의 반응이 의외로 담담했다는 것이다. 당시 만났던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내가 선배 판사에게서 사건과 관련된 전화를 받으면 짜증나더라. 그래서 나도 후배 판사들의 사건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서 그 정도 일은 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사법부 수장인 이용훈 대법원장은 검찰의 조모 전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지난 2일 "법관이 영장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발언을 해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검찰이 고심 끝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후에도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약 일반 국민이 연루된 사건이었다면 검찰이 이토록 고민했을까"하는 반응도 나온다.

불만과 변명 읍소로 일관하며 치부를 덮으려는 모습과 내부의 썩은 살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모습 중 어느 쪽이 수렁에 빠진 법원을 진정으로 살리는 길인지 법원은 고민해야 한다.

죽어야 사는 법이다.

유승호 사회부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