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①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 "수도생활요? 세상살이보단 덜 힘들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 5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2005년) 결과가 발표됐을 때 종교계 최고의 화제는 단연 천주교였다.
천주교 인구(514만6000명)가 지난 10년간 70% 이상 늘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자체 교세 통계(466만7000명)보다 많았던 것.종교 인구가 전반적으로 정체 또는 감소하는 가운데 천주교 신자만 이렇게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민주화와 인권 보호 등에 기여한 공로와 함께 천주교의 풍부한 영성적 전통과 분위기를 꼽는 이들이 많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150여 남녀 수도회 가운데 대표적인 곳을 찾아 기도와 묵상,노동과 봉사를 통한 수도원의 영적 생활과 전통,삶의 지혜를 들어 본다.
기도 '뎅-,뎅-,뎅-.' 새벽 5시15분 종이 울려퍼지자 치맛단이 발끝까지 내려오는 흰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나와 성당 안으로 줄지어 들어온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아빠스(대수도원장)를 필두로 평생을 이 수도원에 살면서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약속한 수도자들이 차례대로 제대 앞에서 예를 표한 뒤 양 편에 마련된 각자의 자리에 선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레고리언 풍의 청아한 기도 소리."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곧 내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리이다…."
국내 최초의 가톨릭 남자 수도원으로서 오랜 전통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막 잠에서 깬 남자들의 목소리가 이토록 맑을 수 있을까 싶다.
새벽 5시20분 독서 기도와 아침 기도로 새로운 날을 맞은 수도자들은 저녁 8시 끝 기도까지 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한다.
아침 미사에 이어 식사가 끝나면 8시부터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에 몰두한다.
점심식사 전에 낮 기도를 바치고 오후에는 역시 노동과 성체 조배,저녁 기도,'거룩한 독서'라는 뜻의 렉시오 디비나,저녁 식사,끝기도 등 잠시도 한가할 틈 없이 하루 일정이 짜여 있다.
1909년 한국에 처음 들어온 베네딕도회는 5세기 후반의 인물인 성 베네딕도(480~560년?)의 수도 전통과 영성을 따르는 수도회다.
이탈리아 중부 노르치아에서 태어난 성 베네딕도는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서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강조했다.
창설 당시부터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지향해 온 베네딕도회는 매일 시간에 맞춰 기도를 바치는 성무일도(聖務日禱)를 '하느님의 일(오푸스 데이)'로 여겨 왔고 '베네딕도 규칙서'에서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라고 할 정도로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노동 한국에 들어온 베네딕도회 역시 기도와 노동이 생활의 중심이다.
서울수도원,함경도 덕원수도원 시대를 거쳐 한국 전쟁으로 인해 1952년 왜관에 자리 잡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왜관수도원 내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유리공예실,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성작(聖爵)과 십자가 등 성물을 만드는 금속공예실,교회용 가구를 제작하는 목공소,분도출판사와 인쇄소,독일식 소시지를 만드는 순대방과 2만여 평의 논 등 다양한 작업장이 있다.
이 밖에도 학교 두 곳과 서울·부산·대구의 분원,남양주와 미국 뉴저지의 예속 수도원 두 곳,분도 노인마을과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간은 영(靈)과 육(肉)으로 구성돼 있는데 영과 육의 조화가 이뤄져야 참된 기쁨과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어요.
기도와 노동은 이를 위한 것이지요.
베네딕도회는 예부터 노동을 통해 그 시대,그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왜관수도원이 해 온 일도 그런 것들이지요."
왜관수도원의 최고 어른인 이형우 아빠스(61)의 설명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수사부터 93세의 최고령 수사까지 70여명이 움직일 수 있는 한 무엇인가 일을 하는 것이 이 곳의 전통이라는 것.덕분에 1만8000평에 이르는 수도원 전역이 깔끔하게 단장돼 있고 만만찮은 수도원 살림살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왜관수도원의 수사들에게는 그러나 노동의 대가가 없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생산해서 함께 사용할 뿐 개인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신발 등 필요한 물품은 살림을 담당하는 당가실에 신청해 받아 써야 한다.
그나마 10만원 이상의 지출이 필요할 땐 아빠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세속의 욕망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적 필요조차도 억제하며 살아야 하는 생활,이런 삶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 아빠스의 대답은 역설적이다.
섬김 "오히려 세상살이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수도자들은 욕망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나은 것,즉 내 뜻 대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닫고 나눠 줄 수 있게 되면 한 인간,한 여성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요?"
이 아빠스는 "자기 안에 기쁨이 있으면 평화롭다"며 "수도생활 자체가 신자와 일반인들에게는 영적 못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왜관수도원은 주5일 근무제 실시와 함께 영적인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 맞춰 개인 및 가족 단위의 피정과 휴식,전시·문화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2400평 규모의 대규모 영성 쉼터를 마련할 예정.150억원가량 들어갈 이 계획이 실현되면 수도원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휴식처가 될 것이라고 이 아빠스는 기대했다.
왜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천주교 인구(514만6000명)가 지난 10년간 70% 이상 늘었을 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자체 교세 통계(466만7000명)보다 많았던 것.종교 인구가 전반적으로 정체 또는 감소하는 가운데 천주교 신자만 이렇게 늘어난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 민주화와 인권 보호 등에 기여한 공로와 함께 천주교의 풍부한 영성적 전통과 분위기를 꼽는 이들이 많다.
전국에서 활동 중인 150여 남녀 수도회 가운데 대표적인 곳을 찾아 기도와 묵상,노동과 봉사를 통한 수도원의 영적 생활과 전통,삶의 지혜를 들어 본다.
기도 '뎅-,뎅-,뎅-.' 새벽 5시15분 종이 울려퍼지자 치맛단이 발끝까지 내려오는 흰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나와 성당 안으로 줄지어 들어온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아빠스(대수도원장)를 필두로 평생을 이 수도원에 살면서 하느님에게 자신을 바치기로 약속한 수도자들이 차례대로 제대 앞에서 예를 표한 뒤 양 편에 마련된 각자의 자리에 선다.
그리고 시작되는 그레고리언 풍의 청아한 기도 소리."주님 제 입시울을 열어 주소서.곧 내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리이다…."
국내 최초의 가톨릭 남자 수도원으로서 오랜 전통과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막 잠에서 깬 남자들의 목소리가 이토록 맑을 수 있을까 싶다.
새벽 5시20분 독서 기도와 아침 기도로 새로운 날을 맞은 수도자들은 저녁 8시 끝 기도까지 하루 다섯 차례 성당에 모여 함께 기도한다.
아침 미사에 이어 식사가 끝나면 8시부터 각자의 일터에서 노동에 몰두한다.
점심식사 전에 낮 기도를 바치고 오후에는 역시 노동과 성체 조배,저녁 기도,'거룩한 독서'라는 뜻의 렉시오 디비나,저녁 식사,끝기도 등 잠시도 한가할 틈 없이 하루 일정이 짜여 있다.
1909년 한국에 처음 들어온 베네딕도회는 5세기 후반의 인물인 성 베네딕도(480~560년?)의 수도 전통과 영성을 따르는 수도회다.
이탈리아 중부 노르치아에서 태어난 성 베네딕도는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로서 기도와 노동의 조화를 강조했다.
창설 당시부터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지향해 온 베네딕도회는 매일 시간에 맞춰 기도를 바치는 성무일도(聖務日禱)를 '하느님의 일(오푸스 데이)'로 여겨 왔고 '베네딕도 규칙서'에서 '한가함은 영혼의 원수이다'라고 할 정도로 노동의 가치를 소중히 여겼다.
노동 한국에 들어온 베네딕도회 역시 기도와 노동이 생활의 중심이다.
서울수도원,함경도 덕원수도원 시대를 거쳐 한국 전쟁으로 인해 1952년 왜관에 자리 잡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왜관수도원 내에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는 유리공예실,미사 때 포도주를 담는 성작(聖爵)과 십자가 등 성물을 만드는 금속공예실,교회용 가구를 제작하는 목공소,분도출판사와 인쇄소,독일식 소시지를 만드는 순대방과 2만여 평의 논 등 다양한 작업장이 있다.
이 밖에도 학교 두 곳과 서울·부산·대구의 분원,남양주와 미국 뉴저지의 예속 수도원 두 곳,분도 노인마을과 구미 가톨릭근로자문화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간은 영(靈)과 육(肉)으로 구성돼 있는데 영과 육의 조화가 이뤄져야 참된 기쁨과 평화로움을 누릴 수 있어요.
기도와 노동은 이를 위한 것이지요.
베네딕도회는 예부터 노동을 통해 그 시대,그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왜관수도원이 해 온 일도 그런 것들이지요."
왜관수도원의 최고 어른인 이형우 아빠스(61)의 설명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수사부터 93세의 최고령 수사까지 70여명이 움직일 수 있는 한 무엇인가 일을 하는 것이 이 곳의 전통이라는 것.덕분에 1만8000평에 이르는 수도원 전역이 깔끔하게 단장돼 있고 만만찮은 수도원 살림살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왜관수도원의 수사들에게는 그러나 노동의 대가가 없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생산해서 함께 사용할 뿐 개인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옷·신발 등 필요한 물품은 살림을 담당하는 당가실에 신청해 받아 써야 한다.
그나마 10만원 이상의 지출이 필요할 땐 아빠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세속의 욕망은 물론이거니와 일상적 필요조차도 억제하며 살아야 하는 생활,이런 삶이 불편하지 않을까.
이 아빠스의 대답은 역설적이다.
섬김 "오히려 세상살이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수도자들은 욕망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나은 것,즉 내 뜻 대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닫고 나눠 줄 수 있게 되면 한 인간,한 여성에게 자신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을까요?"
이 아빠스는 "자기 안에 기쁨이 있으면 평화롭다"며 "수도생활 자체가 신자와 일반인들에게는 영적 못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왜관수도원은 주5일 근무제 실시와 함께 영적인 삶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 맞춰 개인 및 가족 단위의 피정과 휴식,전시·문화 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2400평 규모의 대규모 영성 쉼터를 마련할 예정.150억원가량 들어갈 이 계획이 실현되면 수도원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휴식처가 될 것이라고 이 아빠스는 기대했다.
왜관=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