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석 굿모닝신한증권 투자분석부장(46)은 펀드매니저보다 시장 영향력이 더 큰 애널리스트다.

그는 다른 애널리스트처럼 결코 다작(多作)하지 않는다.

17년을 애널리스트로 보내는 동안 쓴 리포트는 불과 10개 안팎에 그친다.

하지만 내놓는 리포트마다 시장을 뒤흔들었다.

아직도 증권가에 널리 회자되는 '멍멍이(한계기업) 시리즈'(1992년)가 대표적이다.

3년차 신참 애널리스트 때 내놓은 이 리포트는 '매도' 보고서조차 전무하던 시절 투자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자는 취지로 부도 위험이 큰 상장 종목 25개를 실명으로 지목해 증권가를 발칵 뒤집었다.

해당 종목들의 주가는 곤두박질쳤고,기업과 투자자들로부터 거센 항의가 빗발쳤다.

심지어 감독원에서 경고까지 날아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분석은 맞았다.

이후 18개 기업이 실제 부도가 나면서 증시에서 사라졌다.

정 부장은 이후로도 대우그룹 사태의 위험을 경고한 '이무기가 돼 버린 용에 대한 보고서'(1997년)를 비롯 '주식시장 야사록'(2000년) '한국 증시의 잃어버린 15년을 찾아서'(2004년) '황우석 스캔들의 교훈'(2006년) 등 국내 증시의 잘못되고 비뚤어진 모습을 지적하는 일련의 굵직굵직한 보고서를 써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선 그를 'Mr.쓴소리'라고 부른다.

그의 시장을 보는 눈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특히 '성장의 함정'은 그가 가장 경계하는 논리다.

"아직도 상당수 개인들은 단기 고수익을 노리고 IT(정보기술)나 바이오 나노와 같은 신성장주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은 신산업이 성장하는 것과 거기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성공하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점이죠."

이런 관점 때문에 코스닥에 대한 시각은 냉혹하기까지 하다.

그는 "코스닥에는 무늬만 성장주인 주식이 너무 많다"며 "본업이 목적이 아니라 주식시장을 이용해 자본 차익을 챙겨 빠지려는 경영진의 행태를 수없이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들에게 다음의 두 가지 형태 기업은 특히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사명을 자주 바꾸는 기업과 액면가를 수시로 변경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코스닥 상장사 중 무려 88%가 액면가 500원짜리입니다.

대다수는 개인들을 현혹하기 위해 액면분할한 주식들이지요.

실제 코스닥에 투자하는 상당수 개인들은 아직도 액면가 500원의 착시에 빠져있어요.

그러나 따져봅시다.

코스닥 기업 중 30∼40%는 3년 이상 적자를 내고 있어요.

적자기업은 주가수익비율(PER) 환산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 주가 수준을 보려면 액면가 5000원으로 환산해 봐야 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상당수 코스닥 기업들의 주가가 수십만원대예요.

액면가 500원이라는 착시현상 때문에 투자자들은 수십만원대 주식을 아무렇지 않게 사고 있다는 얘기죠."

정 부장은 "이런 '짝퉁' 주식들을 굳이 매매하고 싶다면 카지노게임처럼 임하라"고 당부했다.

다시 말해 투자 초기에 수익을 챙기면 자리를 털고 바로 일어서라는 것이다.

정 부장은 지난 20년간 고민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명품주식을 찾아서'란 보고서를 최근 냈다.

그는 결국 주식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품 주식을 사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품 주식을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경기 부침에 상관없이 꾸준히 이익을 내면서 배당이 안정적이고 남들이 따를 수 없는 희소성을 갖춘 주식이 먼 미래에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는 명품주다.

그는 특히 기업 실적을 볼 때 단순 이익의 절대 규모가 아닌 주가에 1 대 1로 대응하는 주당순이익(EPS)을 볼 것을 주문했다.

이런 측면에서 EPS가 추세적으로 호전되는 종목이야말로 정 부장이 생각하는 명품 주식의 첫 번째 조건이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과거 15년간 내재가치 흐름을 따져 명품주 30개를 선정했다.

에스원 오뚜기 계룡건설 신세계 현대모비스 등이다.

글=정종태·사진=허문찬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