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도해 끝자락의 흑산도는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뜨고 가장 일찍 지는 곳이다.
남도 땅 끝에서 바라보는 일출,일몰은 말로는 표현 못할 장관을 연출한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이름 붙였다는 흑산도(黑山島)는 인간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흑산도 하면 생각나는 게 있다.
조선 후기,16년간 섬에 유배되어 결국 이곳 흑산도에서 생을 마감한 정약전 선생(1758~1816년)이다.
다산 정약용의 형이자 대표적 실학자였던 선생은 천주교 탄압사건인 신유사옥에 연루돼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그때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뱃길 험한 절해고도(絶海孤島)에 갇힌 학자의 심정은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이 위대한 학자는 절망에만 빠져 있지 않고,학자로서의 열정을 바다에서 찾았다.
어부들과 가까이 지내며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제로 조사 채집하며 '자산어보'를 완성했다.
청어 고등어 넙치 등 각 수산물의 이름,분포 위치,겉모습,습성 및 특징 등을 낱낱이 기록하면서 200년 전 우리 흑산도에 살았던 155종 수산동식물의 생태적 특성을 고스란히 기록했다.
후대인 우리에게 자산어보의 가치는 탁월하다.
무엇보다 수산자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당시 우리의 생물자원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삭힌 홍어는 소화촉진 및 기관지에 좋다'는 식의 의약상 성능까지 기록함으로써 생물자원의 이용가치에 대한 식견을 보여준다.
정약전 선생이 오늘을 살았더라면 이들 생물이 어떤 의약산업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기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산어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물은 '자원'이라는 귀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기에 세계 각국이 제3의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생명공학(BT)의 기본재료인 생물자원에 관심을 두고 자생종을 보존하여 생물주권(主權)을 확보하려는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올해 착수한 한반도 자생생물 조사 및 발굴사업은 향후 9년간 총 710억원이 투입되며,이와 연계해 정약전의 자산어보와 같은 '한반도 생물지'를 제작 중이다.
이 두 가지 작업에 매년 150여명의 국내 생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생물표본을 보관해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국립생물자원관'은 2007년 개관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에도 정약전 선생과 같은 열정으로 생물을 연구해 온 대학 교수들의 표본 기증이 줄을 잇고 있다.
우리의 생물주권 확보를 위해 평생 업적이라 할 수 있는 귀한 표본을 내어 놓는 것이다.
학자들의 땀과 자산어보의 가치를 아로새기며 환경부는 우리나라 생물자원의 체계적 관리와 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0년 후쯤 한반도 생물지와 국립생물자원관을 통해 우리 후손들이 생물자원의 경제적·환경적 가치로 인한 놀라운 혜택을 즐거이 누리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