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해본 사람은 안다.

겨우 능선에 올라 한숨 돌렸다 싶었는데 갑자기 내리막길이 나오면 얼마나 한심하고 기운이 빠지는지.내려갔다 다시 오를 생각을 하면 처음보다 훨씬 더 아득한 탓이다.

세상사는 더하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았는데 뜻밖의 일로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전직 대학교수인 돈 슈나이더가 쓴 자전소설 '절벽 산책'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위기 앞에서 사람이 얼마나 무기력해질 수 있는지 속속들이 보여준다.

슈나이더는 노력 끝에 유수대학 교수가 됐고 평가도 괜찮았다.

앞날은 창창한 듯했고 자신감은 넘쳤다.

행복해 하는 식구들을 보는 마음은 즐겁기만 했다.

그는 하지만 갑작스런 구조조정으로 재임용에서 탈락된다.

놀랐지만 다른 대학에 들어가면 된다 여겼던 자존심은 2년반 동안 100여개 대학에서 거절당하면서 처절하게 짓밟힌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절망으로 마구 생활하고 자살 직전까지 갔던 그는 결국 페인트공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내 인생역전을 이뤘다.

슈나이더처럼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정상을 차지했던 사람은 물론 어찌어찌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사람 또한 쓰러지면 좀처럼 일어나기 힘들다.

늪을 벗어나려 허우적댈수록 자칫 발은 더 깊게 빠져들고 그러다 보면 움직여볼 기력마저 사라지기 십상이다.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던 박세리와 김미현의 재기 소식이 반가운 건 그래서이다.

시즌 2승을 거둔 김미현이 "박세리와 자기 모두 그대로 주저앉기는 싫었다"고 했다는데 어쩌면 '주저앉을 수 없었다'가 맞을지 모른다.

온갖 비난을 견딘 건 그런 의지와 줄기찬 노력의 결과일 게 틀림없다.

폭우로 모든 걸 잃다시피 한 수재민들의 원망과 좌절,막막함과 탄식이 가득하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울부짖는 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찢는다.

그래도 그들은 결코 그대로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수재민들이 하루빨리 꿋꿋하게 재기하도록 돕는 일은 너나 할 것 없는 우리 모두의 몫이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