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 < 소설가 >

며칠 사이 많은 전화를 받았다.

내가 지금 사는 고양시 일산에 참으로 많은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하루 4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몇 군데 지대가 낮은 동네는 그대로 침수돼 물난리를 겪고, 일산신도시 내에서는 유일한 산인 정발산 아래의 전철역은 늪처럼 주변에서 흘러들어온 물로 가득찼다.

장마철 피해는 어린 시절에도 늘 겪어서 알았다.

여름 장마와 초가을 태풍(颱風) 때마다 마을 냇둑이 갑자기 분 물에 터져나가거나,산에서 흙이 밀려 내려와 논밭을 덮기도 했다.

그러면 여름 내내 마을 어른들이 합심해 냇둑을 다시 쌓고,전답에 밀려온 모래를 걷어냈다.

해마다 겪는 일이라 매년 피해도 늘 고만고만했다.

어릴 때의 기억이 그래서인지 도시에 나와서 사는 동안에도 장마와 태풍의 큰 피해는 늘 큰물이 모이는 큰 강가의 전답들과 또 큰 강가 옆에 위치한 지대 낮은 도시들만 겪는 줄 알았다.

그리고 더러 계곡의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폭포를 이루는 큰 산 아래의 마을들만 입는 줄 알았다.

그러다 물난리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직접 체득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루사'와 '매미'가 이태나 연이어 영동지방을 휩쓸고 지나가던 때였다.

특히 '루사' 때는 하루 강우량 900mm의 장대 같은 폭우가 쏟아져 내려 마을 자체가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때에도 나는 고향의 그런 수해(水害)를 멀리서 안타깝게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그때 초등학교 동창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친구들의 이야기는 시시각각 고향의 사정을 이렇게 전했다.

"지금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길이 끊어지고,둑이 터지고, 난리도 아닌 모양이다.

침수 정도가 아니라 산에서 내려달려온 물이 계곡을 휩쓸고, 토사가 논밭을 휩쓸어 우리 마을이 없어질지도 모른단다.

어머니와 통화중에 갑자기 전화가 끊겼는데 너무 걱정스럽다." "여기 시내 상황도 말이 아니다.

집집마다 물이 마당에서 계단까지 차올라 거리 전체가 물바다가 됐다.

애를 데리러 나갔다가 물에 휩쓸려 죽을 뻔했다.

학교는 학교대로 애들을 피신시키고 있는 것 같다."

비가 그친 다음의 소식은 더욱 끔찍스러웠다.

"구조대가 장비로 길을 만들어 들어갔지만 우리 친구 OOO의 어머니와 형님은 이미 돌아가셨다.

이 작은 면내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과 산사태에 1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고향은 지금 참혹하다.

그 말 말고는 객지에 나가 있는 친구들에게 전할 말이 없다."

인터넷 게시판에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그런 소식을 읽으며 나는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다음날 고향에 가봤을 때에도 그랬다.

그래서 지금도 큰비가 오거나 큰바람이 불어오면 그때 어느 친구가 올린 '고향은 지금 참혹하다'는 말만 물에 휩쓸리다 걸린 널조각처럼 내 머릿속을 맴돈다.

그때 저렇게 폐허가 된 마을과 황폐한 땅을 어떻게 복구(復舊)하나 했더니, 전국에서 답지한 수재 구호품과 또 전국에서 몰려온 자원봉사자와 군부대의 지원으로 외형적인 피해는 금방 복구했다.

그것은 '루사'와 '매미' 이전의 물난리 때에도 그랬고, 지난해 미국 뉴올리언스 지방을 휩쓴 물난리 때에도 그랬다.

그때 세계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감동했던 바대로 그것이 바로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내 형제와 이웃에 대한 끈끈함이었다.

몇 년 전 내 고향에 내린 그 비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장마에도 국토의 남쪽과 내가 사는 지역 일부 주민들이 물난리를 겪었다.

우리는 언제나 큰일 앞에서 우리의 끈끈한 온정과 저력을 발휘해왔다.

이번에도 나는 우리의 그런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