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노동계가 산별노조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과 달리 오랜 산별노조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 등 선진국 노동현장에선 산별체제가 점차 무너지고 대신 기업별 체제로 급속히 전환하고 있다.

이처럼 산별체제가 쇠퇴하는 이유는 경제환경의 변화로 기업들의 실적에도 격차가 벌어지고 있어 근로자들에게 비슷한 근로조건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별체제란 규모와 경영 실적에 상관없이 여러 기업의 노사가 공동으로 교섭을 벌여 비슷한 근로조건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실적이 나쁜 기업의 노동자들도 교섭력을 바탕으로 우량기업 노동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제화·개방화 시대를 맞아 경영 효율성과 이윤 극대화를 추구해야 하는 기업입장에선 노동자들의 대우를 일률적으로 맞춰줄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산별체제는 여러 기업이 함께 협상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의 마인드가 부족하면 유지하기 힘든 교섭체제다.

영국 정부가 노사갈등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산별노조를 기업별로 바꿀 것을 권유한 것도 이 같은 이유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아예 산별노조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오래 전부터 기업별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전체 기업 노사 중 86%가 기업별 교섭체제를 벌이고 있다.

산별교섭이 주축을 이루었던 미국에서도 기업별교섭이 증가하면서 산별·기업별교섭이 공존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대부분 산별교섭을 벌이고 있지만 교섭체계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상급노동단체와 산별노조,개별 지부노조가 1개씩 존재해 노·노 간 갈등이 거의 없지만 프랑스의 경우 여러 개 노조가 난립해 있어 노·노,노·사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독일에서는 대규모 사업장을 중심으로 기업별교섭이 늘고 있는 추세이고 특히 경영난을 겪는 영소 중소업체들은 산별교섭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개방조항을 시행하고 있다.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다.

독일 산별노조는 막강한 교섭력으로 근로시간 감축,복지 확대 등 많은 성과물을 얻어왔으나 이제는 경제 침체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IG메탈)의 경우 2003년 옛 동독지역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며 장기간 파업까지 벌였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가 산별체제가 더욱 약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프랑스는 다국적 기업인 휴렛팩커드가 2004년 기업별교섭을 한데 이어 공구기업인 보시도 지난해 개별합상을 벌였다. 이탈리아도 1993년 산별 중앙협약 중 임금조정문제를 폐기하는 등 산별 중심의 교섭체제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과)는 "세계화로 시장경쟁이 격화돼 기업 간 지불능력에 차이가 생기면서 유럽의 산별노조도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대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별 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이 같은 환경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