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손택수 '매제의 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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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집에 인사 왔던 날을 기억합니다
그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구두였습니다
이제 막 구두가게를 걸어나온 것 같은 구두코가 우리 집 강아지의 젖은 코처럼 까뭇이 반짝였습니다
누이동생의 팔짱을 끼고 환하게 쏟아져내리는 박수갈채 폭죽속으로 당당하게 행진해가던 구두,오늘 신발장 앞에서 제 구두를 닦다 보았습니다
한쪽에 초라하게 낡은 한 켤레 몇년 만에 만난 그는 상할 대로 상해 알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뒷굽은 닳을 대로 닳았고 반짝이던 코는 무참히 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날 식장을 나선 한 켤레의 구두가
걸어왔을 길을 아득히 헤아리면서 상처투성이 깨어진 코에 약을 발랐습니다(…)
-손택수 '매제의 구두'부분
가까운 사람들의 삶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는 것은 참 못할 짓이다.
결혼식장에서 상기된 얼굴로,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당당하게 출발할 땐 곱고 부드러운 비단길만 보인다.
하객들이 쏟아내는 박수처럼 빛나는 미래가 무지개보다 더 선명하게 떠 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게 우리네 삶이다.
누구에게나 뒤틀린 세월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산다는 것은 시작할 때의 꿈을 음울한 현실과 맞바꿔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 꿈을 지금 얼마나 갖고 있는가.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