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의장을 새로운 선장으로 맞은 열린우리당호(號)가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하는 듯한 모습이다.

경제보다는 정치,성장보다는 분배,미래보다는 과거에 치중했던 열린우리당이 진정으로 전략적 지향점을 바꾸려는 것인지 주목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변화는 당의 최우선 해결과제를 서민경제 회복에 두겠다고 선언한 점이다.

김 의장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첫째도 서민경제,둘째도 서민경제,셋째도 서민경제"라며 '서민경제 올인' 방침을 천명했다.

한국적 현실에 맞는 고도성장전략을 채택,추가적인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의장 취임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미사여구로 느껴질 수 있지만 측근들은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입을 모았다.

한 핵심 당직자는 "취임사에서 언급한 내용은 단어 하나하나까지도 당내에서 깊이있는 토론을 거쳐 신중히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12일 비대위 첫회의에서 '서민경제회복 추진본부'라는 특별기구를 의장직속으로 설치키로 한 것도 주목된다.

서민경제에 올인하겠다는 취임사의 후속대책이다.

경제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비중있는 인물들로 추진본부를 구성하고 여기서 생산되는 경제활성화 정책은 당정협의 등을 통해 당론으로 관철시키겠다는 게 열린우리당측 설명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추진본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 '수출대책회의'와 같은 특별기구의 위상을 갖게 될 것"이라며 "거당적인 서민경제 회복대책들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 지도부가 민생경제 우선을 기치로 내건데 대해 대다수 의원들은 동조하는 분위기다.

김 의장에 대해 "좌파 성향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실용파들도 안도하는 모습이다.

대표적 실용주의자인 정장선 의원은 "추가성장 필요성에 대한 김 의장의 인식은 정확한 것 같다"며 "김 의장에게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보수성향인 정덕구 의원도 "김 의장이 중도실용주의적 시장경제정책으로 가는 방향성을 보였다"며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핵심 경제정책 중 하나인 부동산정책에 대해서도 계파나 이념적 색채를 가리지 않고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비대위 상임위원 7명 가운데 정장선,김부겸,이석현 등 상당수가 적극적인 재검토를 공개적으로 주문하고 나섰다.

재야파의 핵심으로 비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이호웅 의원조차도 "주택을 투기수단화해선 안된다는 부동산 정책의 기본방향은 불변"이라면서 "그러나 처방이 진실로 유효한 것인지,당장 국민에게 불안감을 주고 신뢰를 못주는 점이 없는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의 기류가 급격히 '실용주의' 쪽으로 흐르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당과 청와대간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수정불가'를 분명히 한 부동산 정책에서 뿐 아니라 서민경제 회복을 위한 규제완화,경제정책 수정 등을 둘러싸고도 의견이 갈릴 수 밖에 없다.

당장 당내 일각에서는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재벌정책인 출자총액제한 제도까지 과감히 개선하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출총제 폐지 논란과 관련,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