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초 딸을 낳아 키우고 있는데 도무지 둘째를 가질 엄두가 나질 않아요.
직장 생활과 자녀 양육을 병행할 자신이 없어서지요.
첫째를 맡아 길러주시는 친정어머니께 또 신세를 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렇다고 회사 내 보육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니….한사코 떨어지길 싫어하는 아이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지요."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려면 취업 여성들의 이런 고민을 풀어줘야 한다.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기업이 나서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들이 아직 저출산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저출산의 충격이 서서히 기업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는데도 적극 대응하고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저출산 극복이 지속가능경영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얘기다.
홍승아 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은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 출산·보육친화 경영은 우수 인재를 잡아둘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1사+1보육시설을 갖추자
기혼 취업 여성이 회사에 가장 바라는 건 사내 보육시설 확충이다.
취업포털 사이트인 커리어가 지난 4월 직장인 1107명을 대상으로 '한명숙 신임 총리가 우선 수행해야 할 과제'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69.1%가 '직장 내 탁아소 설치 및 보육시설 확충'을 1위로 꼽았다.
일부 초우량 기업들이 사내 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지만 우리나라 전체 보육시설 2만5319개 중 직장 보육시설은 237개로 0.9%에 불과하다.
법대로라면 상시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혹은 상시근로자 500인 이상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563개 업체 중 규정을 지킨 업체는 263곳에 불과했다.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처벌 규정을 앞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홍승아 연구위원은 "출산·육아 친화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내려주거나 운영비 지원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탄력근무시간제 적극 도입해야
대웅제약 홍보팀 현순경 차장은 출산 후인 2001년 12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만 회사에 출근했다.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근무를 했다.
2년5개월 만에 정상 출근을 시작했지만 불이익은 없었다.
오히려 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했다.
전문가들은 업종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 차장과 같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출산율과 기업의 효율성이 동시에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한다.
대웅제약이 좋은 사례로 이 회사는 재택근무뿐 아니라 육아기에는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탄력근무시간제를 도입하는 등 여직원의 모성 보호를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가족 친화적 기업 문화 만들자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대책 마련에 나선 일본이 저출산 해결에 실패한 데에는 남성중심적인 기업 문화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가족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다.
문제는 적극적인 실천 의지다.
예를 들어 유한킴벌리는 여성 직원 출산 6개월 전부터 정보 공유제를 실시해 출산 후 업무공백을 메움으로써 조직 내에서 임신한 여성 직원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없앴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