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운 < 시인 >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이름이 필요 없다는 지인무명(至人無名).

이런 사람이 많은 사회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요즘 사회 안팎이 정치와 축구 이야기로 들끓고 있다.

왜 축구에 그토록 열광할까? 그것은 철저히 규칙을 준수하기 때문이다.

축구는 거짓이 없다.

피땀 흘린 만큼 정직한 게임이며 페어플레이가 생명이다.

만약 축구에 규칙이 없다면 재미도 없을 뿐더러 누가 그렇게 열광할 것인가? 정치도 축구처럼 그 규칙을 철저히 준수한다면,그리고 축구처럼 오랜 시간 피땀 흘리며 정치의 기술을 익혀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날은 축제의 날이 될 것이다.

국민들은 축구경기를 기다리듯 선거의 날을 기다릴 것이고,축구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게임이 되어 애국심으로 열광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되살아나는 2002년 월드컵의 신화는 아직도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경기가 끝나고도 그 여진을 감당하지 못해 온밤을 골목골목 누비며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날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축구 시즌 만큼 국민들이 하나 되어 애국심을 발휘해 본 적이 있었던가.

꼭 경기장을 가지 않아도 가정에서나 음식점, 혹은 주점에서라도 국민들의 마음은 하나로 뭉쳐진다.

누가 한 골을 넣게 되면 온통 그 사람만 클로즈업 되어 일순간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그 주인공을 있게 한 사람들은 바로 조연들이다.

누구 한 사람이 잘해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여러 사람이 한 팀이 되는 경기는 팀워크가 잘 맞아야 한다.

병아리의 부화과정이 떠오른다.

어미닭이 알을 품는 기간이 21일쯤 되는데,어미닭의 체온과 알의 체온이 딱 일치될 때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안에서 알을 쪼는 것을 '줄'이라 하고,어미닭이 밖에서 알을 탁탁 쳐주는 것을 '탁'이라 한다.

서로 치는 위치가 어긋날 때 병아리는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

'줄'과 '탁'의 일치에 의해 껍질이 깨지면서 비로소 병아리가 세상에 나온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줄을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모두가 일심동체가 됐을 때 만족할 수 있는 경기가 되리라.

연극이나 영화를 관람할 때도 사람들은 주인공에게만 유독 환호하게 되는데,엑스트라가 필요없다면 처음부터 조연의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요소요소마다 필요하기 때문에 자리가 주어진 것이다.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모두가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을 줌에다 놓으면 한 사람만 클로즈업 되겠지만 아웃에다 놓고 경기를 본다면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어느 선수가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더라도 쉽게 실망하거나 돌아서지 말았으면 좋겠다.

너무 결과에만 치중하다 보면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조금 잘 하면 영웅처럼 추앙하며 열광하다가 좀 성에 차지 않으면 그것밖에 안 되냐고 실망하는,쉬 마음이 움직이는 가벼움을 보이기 보다는 승자든 패자든 최선을 다했다면 그 과정만으로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늘 잘 되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어려움은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용서는 상대로 하여금 새롭게 태어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하루 만이라도 선수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말을 찾아보자.칭찬! 그것은 한없이 용기를 줄 것이다.

어디 축구에만 해당되는 말인가.

일상 생활에서도 그렇다.

우리를 삶의 주연으로 만들어주는 조연들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그렇게 아름다운 개개인의 삶이 모이면,그게 곧 지인무명의 성숙한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