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선거에서 참패한 열린우리당이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열린우리당은 2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야당을 향했던 '탄핵 역풍'에 버금가는 심각한 민심 이반으로 당이 뿌리째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불거진 당의 진로를 둘러싼 갈등은 앞으로 여당에 불어닥칠 선거 후폭풍의 예고편으로 여당은 당분간 격렬한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당이 두 동강 나는 최악의 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당 정계개편 격랑 속으로=이번 갈등은 단순히 지도부 사퇴로 막을 내린 과거의 양상과는 다르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여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더하다.

'이대로 가다간 대선도 어렵다'는 인식이 저변에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도부 사퇴와 당 쇄신 차원을 넘어 아예 당 간판을 내리고 정치판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여당 일각에서 정계개편 추진 얘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한나라당이 호남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마저 남북으로 양분돼 있는 현 구도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게 출발점이다.

문제는 향후 진로에 대한 방법론을 놓고 갈등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당장 호남 출신 의원들과 수도권 상당수 의원들은 민주당과 고건 전 총리가 손잡는 '민주세력연합론'에 힘을 싣고 있는 반면 김두관 최고위원 등 친노 세력은 "창당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 위원이 최근 민주세력연합론을 제기한 정 의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때문에 정계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이 둘로 쪼개지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역구도 타파를 지상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친노 세력과 민주당 등과의 연대로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비노측은 근본적인 철학을 달리한다.

따라서 우여곡절 끝에 통합 쪽으로 기울면 노 대통령과 친노 세력이 이탈할 수 있고 거꾸로 통합 불가 쪽으로 흐르면 호남 출신 의원들이 집단 탈당할 개연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지도부 사퇴할 듯=정동영 의장 등 현 지도부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의 책임이 아니고 대안도 없다"며 사퇴를 만류하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지만 최악의 민심 이반을 확인한 마당에 현 체제로 갈 수 없다는 데 당내 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지도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어떤 절차를 거쳐 새 지도부를 구성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현 지도부가 물러나게 되면 창당 후 여당 대표가 4개월에 한 번꼴로 바뀌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당은 당분간 비상대책위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비대위는 여당이 위기 상황을 맞을 때마다 찾았던 단골 시스템이다.

눈앞의 7월 재·보선도 여당으로선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현 민심으로는 선거 승리가 어렵고 이는 여당에 또 다른 충격파가 될 수 있어서다.

이재창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