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최근 우리나라는 재벌기업인들의 수난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얼마전에 있었던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결심공판에 이어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구속이 확정되고 현대자동차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물론 이번 기회에 분식회계 등 불투명한 방법으로 기업성장을 도모하고 불법으로 경영권을 2세에 이양시키려는 과거의 관행을 일벌백계로 응징하겠다는 검찰의 의지는 어느면에서 수긍이 간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정 회장이 이끌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지니고 있는 국가경제상의 위치,그리고 숨막히는 국제경쟁 속에서 최고경영자로서 그의 역할과 책임을 지켜보면서 많은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세계는 21세기 지구촌시대에 자동차산업의 미래 성패를 가늠하게 될 역사적 대결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과 미국,그리고 독일과 한국의 4대 자동차 강국이 세계 도처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시도 놓칠 수 없는 대결단의 순간이 연속되고 있으며 이럴 때일수록 최고경영자의 판단력과 결단력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중차대한 시점에서 자동차업계의 총수가 구속돼 있다는 것은 자동차업계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불행한 일이다.

물론 정 회장이 저지른 죄값은 마땅히 치러져야 한다.

다만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이토록 절박한 자동차산업의 국제경쟁 현장에서 총수의 결단력이 하루도 미룰 수 없는 현시점에서 총수를 구속수감하는 것이 유일한 방편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재조명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반기업 정서, 특히 대기업에 대한 사회의 불신감이 확산되고 있다.

물론 지난날의 왜곡된 '부'의 축재와 분식회계 처리 등 대기업 스스로가 사회악을 조장했던 경영은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대기업이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한 역할과 최고경영진들이 기여한 숨은 노고를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의 성장은 곧 한국기업의 성장사라고 볼 수 있다.

제조업 수는 60년대 초 1만5000개에서 작년에는 11만3000개로 7.5배나 늘어나고 생산액은 615억원에서 678조원으로 무려 1만1000배나 증가했다.

우리나라 100대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글로벌 100대 기업들 보다 월등히 높다.

삼성전자 현대차 LG전자 포스코 등은 연간매출이 10조원을 넘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올해 포천지 글로벌 500대 기업에 우리나라는 11개 기업이 랭크돼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이어 세계 10위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 같은 성장 과정에는 대기업을 이끌어온 최고경영자들의 역할이 지대했다.

국민경제 전체에서 대기업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62.8%,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64.3%에 달한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컴퓨터 석유화학 등 대기업 6대 주력산업이 해외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우리 경제의 핵심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나라 대기업은 외국자본에 의한 지배력 침식 현상이 확연해 지고 있다.

기업의 자산이 커지고 사주의 주식지분이 급격히 저하됨에 따라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 행위가 날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상장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92년 4.9%에서 지난 4월 말 현재 41.7%(217조원)에 달한다.

이 같은 외국기업의 무차별적인 주식지분 침식으로 경영권 유지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사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구노력이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한 시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 부조리를 척결함에 있어서 대기업이 안고 있는 경영상의 고충과 애로를 이해하고 내일을 향한 재도약의 기틀을 확고히 다질 수 있도록 큰 배려가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칫 한국경제의 지난날의 성장패턴을 부정하고 지구촌시대의 무한경쟁시대에 도전하는 우리나라의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도록 깊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