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불법선거운동을 엄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법원이 실제로 선거법 위반 사범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역대 선거 때마다 흔하게 적발됐으나 처벌은 약했던 기부행위나 주택가 호별방문 등 사범들에게 일정 기간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나 징역형이 내려진 사례가 많았다.

현행 선거법상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가 되며 향후 5년간 공무원 입후보 등 피선거권이 제한되고 공직ㆍ교원 임용 등 공무담임에도 제한을 받는다.

◇`후보자 직접 기부' 엄단 =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던 후보자 또는 예비후보가 직접 기부행위에 나설 경우 법원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엄벌을 내리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0부는 선거구민에게 무상으로 태극기를 나눠줬다가 기소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회봉사단체 위원장 김모씨와 사무국장 이모씨에게 이달 초 벌금 150만원과 벌금 1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선거구민에게 태극기를 무상 제공하면서 지방선거 출마를 계획 중인 김씨의 이름이 명시된 태극기를 나눠주거나 김씨가 제공한다는 것을 아는 상대방에게 태극기를 준 것은 기부행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전지법 형사4부는 이달 3일 시의원 출마를 준비하면서 당내 후보 공천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을 지지해 줄 기간당원을 모집해 달라고 부탁하는 등 불법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제주지법 형사4부는 이달 3일 선거구 내 250세대를 호별방문해 도의원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명함을 나눠주고 지지를 부탁한 조모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위법성이 큰 호별방문 행위와 탈법방법에 의한 문서배부 행위를 했고, 지방선거가 임박한 현 시점에서 불법선거운동에 대한 엄중 경고를 할 필요성이 절실한 점을 고려하면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대전지법 형사4부는 5.31 지방선거에서 구의원 출마를 준비하던 중 초등학교 동기모임에 참석해 출마 의사를 밝히고 찬조금 15만원을 낸 송모씨에게 이달 3일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후보자나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에 의해 직접 저질러진 기부행위는 공정한 선거를 저해하는 중요 선거범죄로서 동기의 여하나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 없이 원칙적으로 죄질이 무거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후보 배우자ㆍ지지자 등 탈법행위도 준엄한 심판 = 법원은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의 배우자나 지지자가 금품 수수, 지지 유도 향응제공 등의 각종 탈법행위를 한 경우에도 무거운 벌금형을 매기는 등 엄하게 처벌하고 있다.

또 휴대전화를 이용한 신종 불법 사전선거운동도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부산지법 형사6부는 지난달 25일 선거구 주민 수십명의 입당원서를 받아 당비를 대납한 혐의로 기소된 시의원 후보의 부인 김모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금품 제공은 금권선거의 폐해를 야기할 수 있어 엄정한 형 선고가 요구되는데 시의원 후보로 출마 예정인 사람의 배우자인 피고인이 선거법을 위반한 채 금품을 수수한 범행은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는 지난달 27일 지방선거 후보 예정자로부터 접대를 받은 혐의로 구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은 뒤 조사 서류를 찢은 조모씨에게 벌금 25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명정대한 선거의 정착을 위해서는 선관위 직원의 선거관리 및 단속사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죄책을 엄히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전지법 형사4부는 이달 3일 도지사 예비후보로 나선 특정 인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 25만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동(洞)선거관리위원장 김모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밖에 청주지법 형사11부는 올 3월 휴대전화 문자발송 서비스를 이용해 선거구민 7천760명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인식도를 높이기 위해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혐의로 기소된 군수 입후보 예정자 연모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한편 대법원은 후보자의 불법행위가 당선무효로 이어질 만한 중요 사건은 1ㆍ2ㆍ3심을 각각 2개월 내에 끝내기로 해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연내에 선거사범 판결이 확정되는 사례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사범 재판은 1심 6개월, 2ㆍ3심은 각 3개월 안에 끝내야 하지만 강행규정이 아닌 탓에 과거에는 확정 판결까지 2∼3년이 소요돼 당선된 공직자에 대한 단죄 효과가 미미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거사범 재판 기간이 6개월로 단축된 데다 법의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는 법원의 기류 때문에 당선되더라도 `정치인 봐주기'식 재판 지연은 쉽지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