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료업계에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영업사원의 덤핑판매로 입은 손해액의 절반은 회사측이 책임져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2부(유철환 부장판사)는 롯데칠성의 전 영업사원 김 모씨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서 "김씨는 덤핑판매로 회사에 입힌 손해액 2억3300여만원 가운데 1억1600여만원만 갚으라"고 판결했다고 21일 밝혔다.

○회사의 덤핑 지시 인정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회사 측이 일부 품목에 대해 덤핑판매를 허용한 사실과 김씨의 지점장이 판매실적 제고를 위해 덤핑판매를 부추긴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1인당 1억~3억원인 영업사원의 월 매출 목표는 시장 상황에 비춰 정상적 방법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판결은 롯데칠성이 일부 품목에 대해 덤핑판매를 사전에 허용한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금까지의 소송에서는 영업사원들이 회사의 허락 없이 임의로 덤핑 판매를 한 것으로 여겨 손해액의 70% 이상을 영업사원이 책임져야 하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롯데칠성을 비롯 해태음료 동아오츠카 등 대형 음료업체와 영업사원들 간 덤핑 판매로 인한 손해액의 책임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60여건의 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납품가 차이가 원인


롯데칠성의 영업사원들이 소매상에 칠성사이다를 납품하는 가격은 상자당 9900원인 반면 롯데칠성 본사는 이마트 등 대형 할인점과 청량리 도매시장 등에 직접 7000~8000원에 공급하고 있다.

이에 소매상들이 납품가 인하를 계속 요구하고 나섰고 롯데칠성은 영업사원들에게 최저 8500원까지 할인 판매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영업사원들은 할인가격에 판매를 하더라도 판매실적 보고에 사용되는 전산입력기에는 정상 가격으로만 입력하게 돼 있어 전산상 미수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업사원이 상자당 최고 1400원의 차액을 떠안아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롯데칠성은 오히려 일부 영업사원들이 회사가 허용한 범위 이상으로 덤핑판매를 해 손실을 키웠다며 영업사원들을 횡령 및 배임죄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왔다.

따라서 영업사원들의 덤핑판매가 회사측이 허용한 한도 내에서 이뤄졌는지가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서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형 할인점과 소매상의 납품가는 시장 원리상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점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대형 할인점과 소매상은 구매 물량에 차이가 커 납품 단가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업사원들의 소송 대리인인 김용수 변호사는 "회사가 덤핑판매를 허용한 사실이 밝혀진 만큼 이번 소송이 음료 유통 구조의 모순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