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FTA, 협상보다 더 어려운 것
'사진 결혼'이라는 말이 최근 회자되고 있다.
미국에 가려는 한국여성이 배우자를 찾기 위해 미국 현지 교포나 유학생을 만나지도 않고 '사진'을 보고 결혼하는 일이 지금 우리 곁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여성은 미국병원에 취업하려는 간호사이다.
물론 미국 간호사 자격증을 땄다.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에 응시하는 한국인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영어가 모국어인 캐나다를 제치고 필리핀과 인도에 이어 한국이 세계에서 세 번째라는 사실은 미국간호사 취득 열풍이 불고 있음을 웅변한다.
미국에서 고된 직업으로 분류되는 간호사.매년 30만명이 부족하단다.
그래서 미국은 글로벌 아웃소싱을 선택했다. 금년 4월에 한국인 간호사 1만명을 미국병원이 고용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1960∼70년대 독일로 갔던 한국 간호사가 8400명 정도였음을 생각하면,향후 5년에 걸쳐 이뤄지게 될 한국 간호사의 미국 진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두 배 수준의 연봉을 받게 될 이들에게는 희소식이지만,저출산 사회라는 '국가적 재앙'에 직면한 한국사회로서는 별로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앞으로 자녀교육을 생각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고 미국간호사 자격시험 응시자들은 당당히 말한다.
고액연봉만이 이들을 미국으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열악한 교육환경이 이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금년 초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최고의 보고서'라고 극찬하면서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유했다는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는 저출산,고령화사회로의 급속한 진입과 '고용없는 성장'과 '양극화'라는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서비스분야의 과감한 대외개방만이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삶의 질,국가의 미래를 담당하는 교육,의료,법률서비스는 아직 보호속에 안주하고 있다.
외환위기때 '외자만이 살길'이라던 국민적 합의는 간데 없고 일부 투기자본의 탈세의혹,국부유출 시비 속에 '반외자 정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과연 한ㆍ미FTA를 통해 서비스분야의 대외개방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을까? 정부의 협상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생산자의 이익을 주로 대변해온 각 부처들이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FTA협상을 위해 국익이라는 협상목표 아래 그 다양한 차이를 어떻게 조정해낼 것인지가 관건이다 .협상은 통상교섭본부가 하고 국내조정은 재경부가 한다고 한다.
서비스시장 개방이 효과를 보려면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왼쪽으로 도는' 경쟁억압적인 규제가 사라져야 한다.
온갖 논리를 내세워 결국은 국내 생산자의 이익만을 위한 그 많은 규제를 타 부처가 계속 고집할 때,재경부가 무슨 수로 조정을 할 수 있을까?
경제부총리가 "우리 국익을 위해 교육서비스 전향적으로 개방합시다"라고 조정하려고 할 때,교육부총리가 논리적 오류투성이인 교육 양극화론으로 버틴다면 어떻게 할 건가.
이미 의료,교육의 공공성을 저해하는 개방은 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정부이지만,협상담당부서는 그 범위에서 과감한 개방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고,교육부나 보건복지부는 공공성을 빌미로 개방논의를 봉쇄하자는 것이 속내이다.
"한ㆍ미FTA를 계기로 재경부가 의료서비스,교육서비스 시장개방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고 다른 부처에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얼마전 세미나에서 만난 정부관리의 증언이다.
제발 재경부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의지와 끈기,집요함과 전술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그 치열한 국내부처간 협상에서 왜 미국 간호사 자격시험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떠올리면 무엇이 진정한 국익인지를 생각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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