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마흔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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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걸어온 길/그 언제 하루라도 평안한 날 있었던가/막막하고 팍팍한 세월 돌주먹으로 벽을 치며/시대를 울던,그 광기의 연대는 꿈같이 가고/나 어느새 적막의 마흔을 살고 있다/적을 미워하는 동안 부드럽던 내 마음의 순은/잘라지고 뭉개지고 이제는 적보다도 내가 나를/경계하여야 한다.'
이재무씨의 '시가 씌어지지 않는 밤' 일부다.
시인의 말을 빌릴 것 없이 마흔이란 '내가 나를 경계해야 하는 나이''내가 나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다.
불혹의 나이가 아니라 유혹에 물들기 쉬운 나이인가 하면,좋든 싫든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거나 시작해야 하는 나이다.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그래도 더딘 구석이 있지만,사십줄에 들어서면 눈깜박할 새 오십이 된다. 삼팔선 사오정을 무사히 지난다 해도 오륙도의 벽은 넘기 어렵다.
평균 퇴직연령이 54.1세니까.
평균수명이 77세니 대책 없이 있다간 퇴직 후 20년 이상을 백수로 지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랴.먹고 살 수 있다 해도 긴긴 세월을 뭘 하며 보낼 것인가.
'마흔으로 산다는 것'(전경일) '서드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윌리엄 새들러) '40대 남자의 생활혁명 프로젝트'(이시형) 등이 인기를 끄는 건 그런 위기의식 탓일 것이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의 삶이 어떠했든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마흔을 인생 2막의 출발점으로 보고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서 방향을 정하고 실천하라는 조언이다.
모든 건 상대적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스무 살이 보는 마흔은 많지만 예순 살이 보는 마흔은 청춘 자체다.
마흔이 절벽처럼 느껴지는 이들에겐 이런 시도 있다.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정호승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이재무씨의 '시가 씌어지지 않는 밤' 일부다.
시인의 말을 빌릴 것 없이 마흔이란 '내가 나를 경계해야 하는 나이''내가 나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다.
불혹의 나이가 아니라 유혹에 물들기 쉬운 나이인가 하면,좋든 싫든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거나 시작해야 하는 나이다.
서른에서 마흔까지는 그래도 더딘 구석이 있지만,사십줄에 들어서면 눈깜박할 새 오십이 된다. 삼팔선 사오정을 무사히 지난다 해도 오륙도의 벽은 넘기 어렵다.
평균 퇴직연령이 54.1세니까.
평균수명이 77세니 대책 없이 있다간 퇴직 후 20년 이상을 백수로 지내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일하지 않아도 괜찮다면 다행이지만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랴.먹고 살 수 있다 해도 긴긴 세월을 뭘 하며 보낼 것인가.
'마흔으로 산다는 것'(전경일) '서드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윌리엄 새들러) '40대 남자의 생활혁명 프로젝트'(이시형) 등이 인기를 끄는 건 그런 위기의식 탓일 것이다.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간의 삶이 어떠했든 자책하거나 조급해하지 말고,마흔을 인생 2막의 출발점으로 보고 희망을 갖고 용기를 내서 방향을 정하고 실천하라는 조언이다.
모든 건 상대적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
스무 살이 보는 마흔은 많지만 예순 살이 보는 마흔은 청춘 자체다.
마흔이 절벽처럼 느껴지는 이들에겐 이런 시도 있다.
'절벽을 만나거든 그만 절벽이 되라/절벽 아래로 보이는 바다가 되라/절벽 끝에 튼튼하게 뿌리를 뻗은/저 솔가지 끝에 앉은 새들이 되라…기어이 절벽을 기어오르는 저 개미떼가 되라/그 개미떼들이 망망히 바라보는 수평선이 되라.' <정호승 '절벽에 대한 몇 가지 충고'>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