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남북 정상회담을 사실상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몽골 울란바토르 동포간담회에서 "북에 대해 완전히 열어놓고 있다. 언제 어디서 무슨 내용을 얘기해도 좋으니 만나서 얘기해보자"며 정상회담 의지를 피력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간담회 직후 "정상회담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실무자급이든 장관급이든 정상회담이든 전부를 포함한 것"이라며 기존 입장에서 변화한 것은 없다고 대변했다.

그러나 최근 남북한의 상황과 대화 방향을 보면 노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에 힘이 실려진다.

무엇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6월 중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기로 돼 있고,7월에는 부산에서 남북 장관급 회담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과 중국,일본 관계 등 한반도 외부의 환경도 급속히 변화하는 미묘한 시점에서 조건없는 대화를 강조한 배경이 주목을 끌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집권 3년2개월 동안 북핵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북핵 6자회담에서 일부 성과를 냈으나 올들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북핵문제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국내외적 상황을 보면 남북 정상이 만나 대화로 풀어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북핵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이 강구되거나 충분한 상황이 됐을 때 '자연스럽게' 남북 정상이 만나야 한다고 말해왔다.

무리하게 매달리는 식의 정상회담이 시급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온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부인하거나 일부러 피하지는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 때문에 정상회담을 제안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강변하면서도 굳이 부인하지도 않았다. 북쪽의 반응도 지켜보겠다는 의지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이 "북에 많은 양보를 하겠다"고 말한 것도 눈길을 끈다.

"원칙없는 양보나 본질적인 정당성의 문제는 제외한다"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제도적·물질적 지원은 조건없이 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양보를 해야 하는 이유로 아직도 엄존하는 남북 간의 불신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자연히 군사력도 세니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 바라거나 하는 불안감이 (북한에) 있는데 그 불신이 있는 한 어떤 관계도 제대로 진전히 안 된다"며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했다. 북을 흔들 생각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한 것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에 대한 시각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연 것은 옛날식으로 하면 남침로를 포기한 것"이라며 금강산도 같은 차원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이 불안감을 가지고 있으며 (신뢰쪽으로) 마음을 선뜻 못 내는 것과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을 것이라는 이해심도 드러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