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자원이 한정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로서는 필요할 때 자본을 동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급변하는 글로벌 마켓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0여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금산분리 정책이 가장 강하고 범위도 넓다. 원칙은 지키더라도 이제 제도 완화를 검토할 때가 됐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은 요즘 국회 업무보고나 외부 강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정책'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소신을 끄집어낸다.

그는 한발 나아가 최근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는 4%로 제한되고 있는데 이 한도를 높이면 되지않나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했다.

금감위 직원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윤 위원장은 경직된 금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돈이 흐르지 않는 '돈맥 경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많은 이익을 낸 기업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무작정 현금을 쌓아만 두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 경제적으로 좋지않다는 얘기다.

금산분리 정책이 일부 완화되면 아직 국제수준과 격차가 있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윤 위원장의 소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박승 전 한은 총재가 퇴임 전 "금산분리의 폐지 또는 완화가 필요하다"고 힘을 보탰고,국회 재정경제위 소속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이 "귀기울여야 할 얘기"라고 했으며 시중은행장들도 이 주장에 동의했지만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청와대와 재정경제부,여당 핵심에서는 윤 위원장의 얘기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다들 금산분리가 완화되면 금융이 재벌의 사금고화될 수 있다는 비판을 우려해 공론화하는 걸 꺼리는 눈치입니다.

구더기 무섭다고 장 담그는 것을 포기하는 꼴이지요." 사석에서 만난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외국 투기자본의 전횡을 대책없이 질시하고 말로만 동북아 금융허브를 부르짓는 행태로는 금융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수언 증권부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