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의 증자 추진은 채권단이 최대 주주(50.3%)로 돼있는 현 지분구조에 변화를 가져오게돼 올해 말로 예정된 채권단 지분매각 논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 채권은행들은 증자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그 배경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3일 하이닉스와 채권단에 따르면 하이닉스는 내년으로 예정된 300mm 웨이퍼라인 증설 등 대규모 설비투자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 추진 방안을 채권단과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이닉스는 증자 규모에 대해 기본적으로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입장이지만 최소한 1조원 이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세계 반도체업계의 투자 흐름이 200mm에서 300mm 웨이퍼라인으로 옮겨가면서 투자 비용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며 "내년에 중국공장을 포함한 국내외 생산설비를 증설하려면 4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증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하이닉스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성 자산은 1조5000억원 정도다.
◆ 난색 보이는 채권단
하지만 채권단은 하이닉스의 현금흐름이나 자금 사정이 당장 증자를 필요로 할 정도로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영업이익을 꾸준히 내고 있고 올해 실적 전망도 어둡지 않기 때문이란다.
여기에다 채권단의 전체지분 매각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현 지분구조를 흔들 수 있는 증자를 굳이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채권단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은행들은 정해진 일정에 따라 하루라도 빨리 보유지분을 파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라며 "그런데 증자를 통해 주식가치가 희석되고 지분구조도 복잡해질 경우 지분 매각 작업이 훨씬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다른 배경 있나'촉각
이 때문에 채권단 일각에선 향후 유상증자 때 채권단의 대규모 실권을 내다본 하이닉스의 현 경영진이 제3자 배정 방식 등을 통해 채권단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회사의 시가총액이 14조원을 넘나들 정도로 덩치가 커져 국내외에서 마땅한 원매자를 물색하기 어려워진 만큼 소유구조 분산을 통해 특정의 오너십이 없는 '미국형 주식회사'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같은 관측에 대해 하이닉스측은 펄쩍 뛰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증자는 투자재원 조달을 위해 지난해부터 내부적으로 검토해왔던 사안중의 하나이고 지배구조를 변경하려는 그 어떤 의도도 없다는 설명이다.
조일훈·유병연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