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주요 대학들은 2008학년도 학생부(내신) 반영비율을 20%(서강대)∼40%(서울대 연·고대 등)로 설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21개 대학이 2일 내놓은 '2008학년도 대입전형 공동입장' 성명서의 골자는 이 비율을 50% 이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올들어 대학을 상대로 "학생부 신뢰도가 높아진 만큼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학생부 위주의 대입 전형이 이뤄져야 한다"며 학생부 반영비율 상향 조정을 요구해 온 교육인적자원부의 입장이 관철된 셈이다.

그렇지만 학생부가 앞으로 얼마나 중요해지는지를 당장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명목상 학생부 반영비율을 올린다 해도 기본 점수를 충분히 주는 '편법'을 통해 실질반영률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 판단은 대학별 세부 전형계획이 나오는 6~7월에나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설득에 학생부 비율 높여

대학 자율성을 주장하며 교육인적자원부와 마찰을 빚어온 서울지역 주요 대학들이 학생부 반영률을 50% 이상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교육부가 2008학년도 대입제도 정착을 위해 정착 추진단을 발족하고 김진표 교육부총리가 직접 대학을 돌며 설득한 것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교육부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를 바탕으로 수능과 학생부의 신뢰도를 거듭 강조해왔다.

교육부의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2006학년도 수능시험에서 언어,수리,외국어(영어) 3개 영역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전체 응시자의 0.85%에 불과했고 지난해 2학기 고교 1학년의 학생부에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과목에서 모두 1등급을 받은 학생은 0.34%뿐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들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대학이 학생부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학생부의 변별력을 높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대학들 속사정은 '글쎄'

지난해 12월26일 서울지역 7개 사립대학 입학처장들은 공동으로 학생부 비중을 20~40%로 한다는 내용의 2008 대입전형계획을 발표,교육부를 당혹스럽게 한 바 있다.

당시 주요 대학이 밝힌 2008학년도 학생부 반영비율은 서울대 40%,고려대 40%,서강대 20%,성균관대 40%,연세대 40%,숙명여대 40%,이화여대 40%,한양대 40%,중앙대 40% 등이었다.

대학들의 '입장 변화'로 명목상 학생부 반영률이 크게 늘어난 만큼 실질반영률까지 높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예를 들어 전형 총점을 1000점이라고 했을 때 학생부 성적 500점,수능성적 500점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명목상 학생부 반영률은 50%이다.

하지만 대학들은 그동안 학생부 만점 500점 가운데 450점을 기본점수(가장 낮은 점수)로 배정,최고점자와 최저점자의 차이를 50점으로 줄이는 변형된 방식 등을 동원해 학생부 성적을 산출해왔다.

이 경우 학생부 실질 반영률은 50점이 전형 총점 1000점에서 차지하는 비율,즉 5%에 불과하다.

2007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서울지역 주요 대학의 학생부 실질반영률은 2~12% 수준이었다.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정부와 대학교육협의회에 등을 떠밀려 합의는 했지만 대학으로서는 세부적인 전형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라며 "우수 학생을 선별해 내기 위해 각종 특별전형과 심층 구술고사를 활용하는 등 묘책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교협이 주도한 이번 공동발표에서는 비수도권대학과 국립대 등은 변별력 약화로 중간 성적대 학생층이 늘어나 학생 선발에 어려움이 많다고 이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내신 사교육 시장 더 커질 듯

학원가에서는 이번 조치로 사교육 열풍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논술 등 대학별 시험의 비중이 줄었다고 하지만 당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기존과 다를 바 없어 대학별 고사와 관련된 사교육 수요는 별반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 내신 관련 사교육 수요는 반영비율 증가에 힘입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논술 열풍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는 '초등학교 독서교실' 등 조기 논술교육 시장은 논술반영비중 하락으로 다소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일선 학교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당장 중간고사를 치르고 있는 일선 고교에서도 '환영'보다는 '걱정'이라는 반응이 먼저 나오고 있다.

'내신 점수 따기 경쟁'이 과열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김영일 교육컨설팅 대표는 "주요대학의 경우 내신의 실질반영비율을 현재보다 다소 높이는 선에서 대입안의 변경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높다"며 "학생부의 반영비율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대학별 시험과 수능도 소홀히할 수 없어 학생들의 부담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실장은 "이번 조치로 자립형 사립고나 외국어고 학생들이 받는 불이익은 기존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들이 인문계고로 줄지어 전학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혜정·송형석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