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불을 지르시오."

"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당신이 군인의 본분에 따라 명령에 복종하듯이 절을 지키는 것은 나의 도리요.

나야 죽으면 어차피 다비에 붙여질 몸이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불을 지르시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법당에서 한암(漢岩) 스님과 사찰소각 명령을 받은 국군 정훈 장교 사이의 대화다.

결국 장교는 법당 문짝만 떼어내 소각하는 시늉만 하고 돌아갔고 상원사는 소실 위기를 넘겼다.

북방제일선원으로 불리는 상원사 청량선원.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선지식이 수행한 곳이다.

안거(安居) 때마다 전국의 수좌들이 몰려들지만 방부(입방신청서)를 들이기 가장 어려운 선방이기도 하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등에 업고 정진하니 깨달음이 절로 올 것 같다'는 선승들의 도량.

새벽 2~3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정진하는 선방 생활은 한마디로 고요와 적멸의 세계다.

참선과 묵언으로 이어지는 구도행이 바늘끝처럼 치열하다.

그래서 선방은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며 납자들이 스스로를 가둔 '닫힌 공간'이다.

'선방에서 길을 물었더니'(서화동 지음,고즈윈)는 이 같은 전국 산사의 선원 25곳과 프랑스 파리의 사자후선원 등 26곳의 구도현장을 담은 책이다.

뼈를 깎는 수행 모습과 선사들의 가르침,선원의 역사와 전통에 얽힌 얘기까지 엮어냈다.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 등 5대 총림 선원을 비롯해 부처님 오신 날 외에는 신자들의 발길도 허용치 않는 문경 봉암사,성철스님의 수행처였던 대승사 대승선원,좁은 방에 자신을 가두고 폐문정진하는 백담사 무금선원 등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10년 이상 종교 분야를 취재해온 베테랑 기자.

세간과 출세간을 오가며 선불장(選佛場ㆍ부처를 뽑는 자리)의 죽비 소리를 전하는 내공이 돋보인다.

문장도 정갈하면서 깊이있다.

구도현장에서 전하는 선사들의 지혜 또한 넉넉하다.

100년 만에 처음 속인의 발길을 허용한 범어사 금어선원의 인각 스님은 "참선공부에 출가ㆍ재가가 따로 없으니 간절하게 발심해 마음으로 공부하면 반드시 견성(見性)한다'고 가르친다.

성철의 은사인 동산 스님이 범어사 경내 대숲을 거닐다가 바람에 부딪히는 댓잎 소리에 마음이 열렸다는 얘기를 듣고 저자는 이런 물음을 스스로 던진다.

'지극한 마음의 거처는 어디인가.'

성불을 다짐하며 손가락 세 개를 태워 공양한 서귀포 남국선원의 혜국 스님은 "화두 참선의 참맛을 알려면 구도의 뜨거운 눈물로 무릎을 세 번은 적셔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일은 내 마음농사를 잘 짓는 것이니 자기 안에 있는 욕망과 시기 질투 번뇌 망상을 화두로 돌려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부처를 깨우라"고 얘기한다.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속은 줄도 모르고 남한테 속았다고 한다"며 자기 귀에 속고,눈에 속고,혀에 속으면서 사는 중생들을 경책하는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의 죽비 법문도 쟁쟁하다.

318쪽,1만2800원.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