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 일이다. 패션상품으로 유명하던 미국 뉴욕의 메이시 백화점에 비상이 걸렸다. 패션상품 대신 가정용품을 사러 오는 손님들이 갑자기 늘었기 때문이었다. 70%에 달했던 패션상품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반면 가정용품 비중은 60%에 육박했다. '의외의 손님'들이 나타난 것이다.

메이시 백화점이 택한 방향은 이랬다. 패션상품을 더 파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가정용품 매출을 줄이는 방안도 같이 강구했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양쪽 모두에서 고객을 잃었다. 메이시가 가정용품을 본격적으로 팔기로 결정하는 데는 이후 20여년의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피터 드러커는 메이시 백화점의 사례를 들면서 가장 손쉬운 것인데도 놓치기 쉬운 혁신의 원천으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들고 있다. 의외의 부문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성과를 올리고 있다면 바로 그곳에서 큰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기업들이 메이시의 경우처럼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성향을 보인다.

20세기 초 국부마취제 '노보카인'을 개발한 독일 화학자의 예를 보면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당시 의사들은 전신마취제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노보카인'은 몇 해 동안 아예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새로운 손님들이 나타났다. 바로 치과의사들이었다. 그 화학자는 자신의 개발 의도와는 달리 치과용으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설득하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성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과거에 연연하는 관성 때문이다. 이때까지 해오던 것이 '정상'이고 그것에서 벗어난 것이면 '실패'나 '곁가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드러커의 말대로 예상하지 못한 성공을 거두고 의외의 손님이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고객군의 출현'으로 봐야 옳다. 찾아내고 개발하기도 힘든 고객들이 제발로 걸어왔는데 이보다 나은 기회가 있겠는가.

국내 모식품의 보리차음료 성공 사례를 보자. 당초 이 회사는 대중들이 보리차음료를 사먹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다. 실제로 초기 반응은 '썰렁'했다. 그런데 출시한 지 몇 달 만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홍콩 항공사와 고급 술집에서 주문을 해온 것이다. 홍콩 항공사는 한국인 승객들의 기내식용으로,유흥주점에서는 우롱차 대용으로 보리차음료의 새 가치를 발견한 것이었다. 편의점에서도 대량주문이 들어왔는데 삼각김밥이 인기를 끌면서 함께 먹으려는 손님들이 급증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하나 당초 공략대상으로 삼은 고객군이 아니었다. 새로운 고객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순간,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에서 기회를 잡아 가장 큰 대박을 터뜨린 것이 바로 '한류'다. '사랑이 뭐길래' '겨울연가' '가을동화' '대장금' 등을 만든 사람들은 이것이 일본에서,중국에서 그런 성공을 거둘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한류는 새로운 고객군이 원하는 가치에 집중한 혁신에 다름 아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잘 안되고 있는 분야의 보고를 받는 대신,작은 규모라도 '새롭게 잘 되고 있는 분야'에 관한 사내 정보를 체크하는 것이다. 하찮게 여기다간 경쟁자에게 혁신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