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선물거래소에 상장된 12월결산 제조업체들의 지난해 말 현재 평균 유보율(留保率)이 607%에 달해 1년 전보다 100%포인트나 높아졌다고 한다.

유보율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친 금액을 자본금으로 나눈 것으로,이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그만큼 호전되고 재무구조가 튼튼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최근의 기업 유보율 급상승은 결코 반길 일만은 아니다.

기업들의 이익 규모가 급팽창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신규 투자(投資)가 극도로 부진한 점에 근본적 원인이 있는 까닭이다.

이는 상장 제조업체들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10%가량이나 줄어든 점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 10대그룹이 쌓아두고 있는 돈만 135조원을 넘지만 이들 기업은 넘쳐나는 현금자산을 투자로 돌리기 보다는 머니마켓펀드(MMF)나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 같은 단기 금융상품으로 운용하는데 급급한 실정이다.

경기 전망이 워낙 불투명한데다 거미줄 같은 규제까지 겹쳐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투자 확대야말로 기업의 미래 생존력을 확보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걱정스런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유보율 향상을 통한 재무구조개선이 전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부실한 기업 재무구조 등으로 인해 외환위기까지 닥쳤던 만큼 유보금이 급증하고 부채비율이 80%대까지 떨어진 최근의 변화는 분명히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재무구조 개선도 투자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막대한 기업 여유자금이 투자 쪽으로 물꼬를 트지 않고선 자금의 선순환에 의한 소비심리 회복과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든 까닭이다. 특히 소생 기미를 보이던 경제가 최근 다시 불안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 필요성은 더욱 크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들의 투자 의욕이 되살아날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를 서둘러 완화하는 것은 물론 대립적 노사문화, 반기업정서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치유하는데 총력을 경주(傾注)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최근 확대일로를 걷고 있는 검찰의 김재록 로비의혹 및 현대차 수사에 대해서도 기업의욕을 지나치게 움츠러들게 만드는 측면은 없는지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